국제 금융시장 위기 10년 주기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발(發) 경제 위기설.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전세계 확산설…. 외환위기 10년을 맞는 올해, 제 나름대로 탄탄한 근거를 갖춘 위기 재발론이 그치지 않고 고개를 들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이 같은 위기설을 의식한 탓인지 최근 '외환위기 10년, 국제금융 이렇게 달라졌습니다'라는 자료를 발표하고 "더 이상 외환위기 같은 상황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10년간 외환보유액은 13배가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전 628억 순채무국에서 10년 후 810억원의 대외 순채권국으로 전환됐다…. 이런 지표개선에서 볼 수 있듯, 1997년의 환란과 같은 경제위기는 구조적으로 재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묻는 경제연구소와 언론사들의 설문 결과를 보면, 조사기관에 따라 경제전문가들의 10~48% 정도가 여전히 '재발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불안한 것일까.
금융기관을 살펴보면 건전성이나 수익성이 지난 10년간 크게 향상됐지만 이는 상당부분 비용축소와 구조조정,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결과일 뿐 자체 경쟁력이 향상됐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과점체제를 갖춘 은행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속에, 주택담보대출 등 단순한 예대마진 위주의 영업과 수수료 수입에 안주해 왔다.
이런 풍토 속에 국내 대부분 금융기관은 미개척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고수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가계대출 외화대출 등 그때그때 이윤이 있는 곳에 한꺼번에 몰려드는 무분별한 '쏠림'영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 부동산 가격 급등이나 단기외채 증가 등 또 다른 형태의 경제위기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기업들 역시 외환위기 직후 환율급등에 따른 가격경쟁력에 힘입어, 손쉽게 수출호황을 누려왔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렇게 늘어난 이익잉여금을 빚 갚고, 주가 떠받치는 데에만 쏟아 부었을 뿐, 새로운 영역에 대한 기술개발이나 투자는 회피하는 모습이다. 그 사이 중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과의 기술격차는 급격히 좁혀지고 있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이후 '위험 관리'의식이 과잉현상을 일으키며, 모험을 무릅쓴 혁신을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찾아가는 도전적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것이다. 현실에만 안주한 채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들의 자세, 이 역시 위기라면 위기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과거 폐습을 지워버리는 구조조정은 마무리된 만큼, 이젠 적극적으로 현 경제체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기업이 서구 주주자본주의에 매달려 단기이윤만 중시하고, 인력을 줄이고, 배당만 많이 하는 관행은 중지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기업주가 적대적 인수합병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기업주가 안심하고 장기투자와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규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은 "유가, 금리, 환율 등의 흐름이 이미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며 "임박한 대선과 베이징 올림픽 이후 그 동안 경기과열에 따른 후유증이 현실화할 것에 대비해 한발 앞선 경기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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