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의 16개 정보기관들이 3일 "이란은 2003년 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으며 올해 중반까지 이를 재개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국가정보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란은'진행중인'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밝힌 2005년'국가정보평가 보고서'의 결론을 뒤집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대이란 강경책의 타당성, 2005년 정보평가에 대한 정치적 외압 여부 등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보기관들은 정보평가를 바꾸게 된 구체적인 배경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이란이 2003년 가을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높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들은 이어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더라도 최소한 2년 내에는 어렵고 2010~2015년이 돼야 핵무기 제조에 충분한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관리는 "올해 여름 확보된 비밀 정보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0월 "핵 무장한 이란은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강경 일변도의 발언을 쏟아냈다. 미 관리들은 부시 대통령 등이 당시 정보평가 변경 과정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은 "이라크는 생화학 무기를 갖고 있으며 핵무기 프로그램을 재가동키로 했다"고 주장했다가 결국 오류로 밝혀진 2002년 정보평가의 재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국제사회가 이란에 외교적 고립과 유엔 제재, 재정적 압박을 가하고 이란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결심하는 것"이라고 말해 강경책의 고수를 시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국제사회에서 관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이번 정보평가 변경은 "이란 핵무기 개발의 증거가 없거나 확실치 않다"고 주장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판단이 옳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이란 추가제재 등 미국의 강경책에 대한 국제 지지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당장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보조를 맞춰온 프랑스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번 정보평가 공개를 앞두고 부시 정부내에서도 강온파 사이에 격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임기를 1년여 남겨놓고 있는 부시 정부가 이란 핵 문제를 전향적인 협상국면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사전 조치로 바뀐 정보평가를 내놓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부시 정부가 북한 핵 문제에 이어 이란에 대해서도 '주고 받기식 협상'을 통해 핵 문제 해결함으로써 외교 업적을 남기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모하마드 알리 호세이니는 4일 "이번 보고서는 부시 대통령의 이란 핵 개발 위험 발언이 신뢰성이 없고 거짓임을 증명한다"면서 보고서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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