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구가 안 보인다. 변동금리 대출이‘이자 8% 시대’를 연데 이어 대안으로 여겨지던 고정금리 대출마저 연 9%대에 육박하자 대출자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이자부담은 시나브로 늘어나는데 뾰족한 묘수가 없으니 넋을 놓을 수밖에 없다.
고정금리 대출은 변동금리 대출자에겐 마지막‘비장의 카드’나 다름없었다. 금리 급등기에 ‘변동에서 고정으로 갈아타라’는 충고는 재테크의 단골 메뉴였다. 고정이 변동보다 이율이 조금 높긴 하지만 금리 상승 지속세가 예상된다면 수시로 올라가는 이자를 내기보다 확정된 금리로 바꿔 내는 게 유리하고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말 4대 시중은행(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의 변동금리와 고정금리(3년 만기) 이자 차이(최고금리 기준)는 0.2~0.35%포인트였다. 올 1년 사이에 변동금리가 1% 가까이 올랐으니 올 초에 고정금리로 바꿨다면 중도상환 수수료를 감안하더라도 크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변동→고정’이란 생각의 싹마저 자른 형국이다. 고정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AAA 등급)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인데, 6일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은행채 금리는 연 6.6%로 지난해말(5.15%)보다 1.5%포인트나 올랐다. 같은 기간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0.80%포인트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거의 2배 수준이다.
이는 시중은행의 고정금리(3년 만기) 대출상품 이자 상승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리은행의‘아파트 파워론Ⅲ’은 6일 현재 최고금리 기준으로 9%고지를 넘었는데, 구간은 연 7.56~9.06%로 1년 전보다 1.91~2.01%포인트나 급등했다. 변동금리(연 6.53~8.03%)보다 1.03%포인트나 높다. 지난해말 변동 대 고정 이자 차이(0.35%포인트)보다 3배 가까이 벌어진 셈이다. 그러나 은행 관계자는“각종 우대금리가 제공되기 때문에 최고금리를 내는 고객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역시 각각 연 7.55~8.95%, 연 7.26~8.86%로 9%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엔 4대 시중은행 모두 고정금리가 6%후반~7%초반이었다. 1년 사이에 모두 2%포인트 가까이 올랐고, 변동과의 차이도 1%포인트 넘게 벌려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변동에서 고정으로 옮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 규모가 49조5,346억원으로 올 상반기보다 15조1,155억원이나 많고, 특히 1월에 대부분 집중돼 있다. 만기가 집중되면 채권 발행이 늘고 이는 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고정금리 대출 이자도 더 오른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대출자만 죽을 맛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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