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 에 나오는 대부분의 문장들은 아파트 6층 방에서 쓰여졌습니다. 깊은 밤, 그 방에서 문장을 짓고 있으면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곳에서 이웃이 내는 일상적이고 비일상적인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 소리의 정체를 상상하다 보면 내가 이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육장>
알 수 없는 이웃에 대해 쓴다는 게 이상해서, 종종 의자를 빼고 맨바닥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불편함을 참지 못해 벽에 등을 기대면, 제가 기댄 벽은 아파트 1층에서 24층까지 이어져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제가 벽에 등을 기댄 것처럼, 누군가 이 긴 벽에 언제고 등을 기댔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마주 기대 앉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앉아 벽이 온기로 차오르는 걸 기다리다보면 이웃에 대해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 기분마저 오해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의자에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이웃과 벽으로 가로막힌 것에 위안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벽이 있어서 이웃의 삶을 아는 척하지 않아도 되고, 그들의 모든 삶을 일일이 지켜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했을 것입니다.
이웃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걸 그들에게 들키지 않아도 되는 걸 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미약하나마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생활의 허기를 이해하고, 성실한 일상을 존중하며, 반복되는 일상의 환멸과 고독을 긍정할 수 있게 된 것은 다 소설 덕분입니다.
기꺼이 소설 쓰는 ‘노동’을 택한 것이 기쁩니다. 노동이라는 말은 그 말의 속성을 꼭 닮아 왠지 무겁고 말의 끝이 힘겹게 처집니다. 소설을 쓰는 노동이라고 해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습니다만, 그 내려앉은 마음이 심연을 응시하며 심연 속에 좀더 깊이 머물게 하고, 경솔하게 세계를 긍정하지 않고 화해를 도모하지 않으면서, 고독과 불안 속에서 의심하고 불화하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소설이 소설만으로 위무가 되고 위안이 되는 것을 기쁘게 감내하면서 소설을 써 나가겠습니다.
제가 받은 상이 한국일보문학상이어서 특히 기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소설을 쓰는 동안 등을 마주 기대준 많은 사람들, 가족들, 자매들, 선후배들에게 함께 있어 주어 고맙다고 말하게 되어 기쁩니다. <사육장 쪽으로> 에 나오는 불안하고 고독한, 산주검과도 같은 인물들에게 앞으로도 좀더 견뎌 달라고 말하게 되어 기쁩니다. 사육장>
그들의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빌미로, 제가 견디어 온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불안과 고독을 기제로 일상을 견디는 걸 불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상 때문에, 앞으로 오랫동안 열심히 소설을 쓰겠다는, 뻔하지만 가장 큰 진심을 담은 열망을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 상이 아니었다면, 그런 열망을 고백하는 게 부끄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미숙한 작품들을 읽고, ‘편혜영 쪽으로’ 손을 내밀어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는 길이 힘들 때면 오롯이 서서 이 순간을 돌아보고 힘을 얻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 시상식 현장에선
한국일보사가 제정하고 GS가 후원하는 제4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편혜영(35)씨에 대한 시상식이 4일 오후6시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수상작은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 사육장>
본심 심사위원인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개별 중단편이 후보작이었던 예년과 달리 소설집 5권과 장편 1권 등 6권의 쟁쟁한 소설책이 본심에 올라 우열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며 "편혜영씨의 작품은 단편소설의 고전적 규범을 정확하게 습득한 바탕 위에서 정연한 듯한 현실이 원초적 미혹에 먹혀버리는 광경을 기괴한 방식으로 포착했다"며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역시 본심위원인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는 축사에서 "편씨의 등단작부터 최근작까지 읽어왔는데 시대에 편승하는 듯한 초기 경향을 벗고 어느새 자기만의 주제를 찾아내고 있었다"며 "상을 받고 더 힘을 낼 수 있는 작가를 고심해 선정한 만큼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편씨에게 상금 2,000만원과 상패가 수여됐다. 아울러 작가의 건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최고급 몽블랑 만년필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편씨는 "소설을 쓰는 '노동'을 택한 덕에 미약하나마 이웃의 삶을 생각하고, 생활의 허기를 이해하고, 성실한 일상은 존중하며, 반복되는 일상의 환멸과 고독을 긍정할 수 있었다"며 "한국일보문학상 때문에 앞으로 오랫동안 열심히 소설을 쓰겠다는, 가장 큰 진심을 담은 열망을 말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상식엔 수상자의 신춘문예 등단작을 심사했던 소설가 현길언씨와 역대 수상자인 은희경, 이혜경, 신경숙, 강영숙, 하성란, 김애란씨를 비롯, 시인 김혜순 조용미 김소연 송승환 김경인, 소설가 성지혜 이기호 김중혁 윤성희 이신조 이홍 박선희, 동화작가 김민령, 평론가 정홍수 신수정 김미현 심진경, 출판인 염현숙 조연주 김정혜 김진희 김필균씨 등 50여 명의 문인들이 참석, 편씨의 등단 7년만의 첫 문학상 수상을 축하했다.
편씨의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 (2005)의 해설을 쓴 평론가 이광호씨는 "수상작을 보면 작가가 자신의 특출한 개성을 살리면서도 그것을 일상적 문맥 속으로 끌어들이려 치열하게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며 편씨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오이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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