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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미래를 위한 사표(死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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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미래를 위한 사표(死票)

입력
2007.12.10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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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분열과 후보 난립이 겹쳐, 17대 대선 당선자는 1987년 대선 이래 가장 낮은 득표율에서 결정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이번 대선에서 나올 사표(死票)의 비율이 87년 대선 이래 가장 높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식의 부화뇌동, 곧 밴드왜건효과의 심리적 바탕도 그것이고, 지난 16대 대선 막판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망설이게 했던 정치적 연산의 바탕도 그것이다.

그러나 사표에 정치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대선 때 유효표의 51%가 넘었던 사표는 유권자 과반수가 노무현 후보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노 정권의 행보를 일정하게 제약했다.

그 사표 가운데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받은 표는, 비록 유효표의 4%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선거공학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사회민주주의 신념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권자들이 바로 그만큼은 있음을 보여주었다.

■ 빅쓰리' 이념의 동질성

이번 대선에서도 민노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일 가능성이 100%다. 다시 말해 권영길 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은 0%다. 그러나 권영길씨에게 던져질 사표는 다른 사표들과 그 정치적 의미가 다르다.

지금 빅쓰리라 불리는 정동영 이명박 이회창씨 가운데 두 사람에게 던져질 사표는 어떤 인물이나 패거리에 대한 호오를 드러낼 뿐, 가치나 이념의 차이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빅쓰리가 일종의 연예인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들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앞날이 크게 다른 경로를 걷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네거티브 캠페인 탓에 정책선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이 곧잘 나오고 있지만, 과연 이들 빅쓰리의 정책이 그렇게 서로 다른가? 아니 설령 지금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책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다름이 집권 이후의 실천으로까지 이어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런 양두구육은 때깔 좋은 언어를 내세워 집권한 노 대통령이 지난 5년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선량한 범여권 지지자들은 이명박씨나 이회창씨가 집권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대북정책이 지금의 화해협력 노선을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이회창씨의 가장 격렬한 언어조차 극보수 유권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다. 막상 집권했을 때, 그에겐 지금까지의 화해협력 정책을 뒤집을 힘도 의사도 없을 게다.

현단계에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미국 정부와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니 말이다. 선량한 범한나라당 지지자들 역시 정동영씨가 집권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정부가 정신분열적 태도로 증명했듯, 가상의 정동영 정부 역시 말은 어떨지 몰라도 그 몸뚱이는 재벌-관료 동맹 위에 얹혀 부익부 빈익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매진할 테니 말이다.

물론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권력잔치의 초대장에 박힌 이름은 달라질 것이다. 이명박씨나 이회창씨가 집권하면, 그 잔치에 그들의 친구가 초대될 것이다.

이 잔치에, 선량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정동영씨가 집권할 경우엔, 그 잔치에 정동영씨의 친구들이 초대될 것이다. 이 잔치에도, 선량한 범여권 지지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지지자와 친구는 다르다. 대통령 선거의 격렬함은 이 잔치에 끼고자 하는 예비 파워 엘리트들의 욕망의 결렬함이다.

■ 잔치의 판을 바꾸려면

민노당은 그 잔치를 모두의 잔치로, 특히 서민과 소수자의 잔치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섣불리 믿을 일은 아니겠으나, 그간 이 정당이 복지와 분배와 평화와 인권 감수성에서 다른 정당들과 질적 차이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민노당에 던지는 사표가 여느 사표와 다른 이유다. 그 사표는 이념의 사표이자 가치의 사표다. 미래를 위한 사표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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