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외형 늘리기식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내실 위주의 보수적 경영으로 돌아선다고 한다. 미국 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초래한 신용경색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고 무리한 대출확대 경쟁으로 나빠진 수익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란다.
'외환위기 10년'의 교훈을 체득한 은행권이 금융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일찍부터 위험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속을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시중 은행들은 지금 유동성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글로벌 저금리와 국내 경기회복을 배경으로 대출자산을 마구 늘리며 유동성 관리에 소홀했다가 단단히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 채권금리 급등(채권값 급락)에 따라 한국은행이 내년 초로 예정했던 1조 2,000억원 대의 국채물량을 서둘러 사들인 것은 은행권의 돈 가뭄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 준 일이다. 지난 달 초엔 리딩 뱅크라는 국민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마감일까지 채우지 못해 한은에서 8,000억원의 긴급자금을 수혈 받는 일도 있었다.
은행권은 예금이 증권사의 고수익상품이나 증시로 빠져나갔고 정부 규제로 인해 단기외화 차입이 차질을 빚은 것 등을 이유로 들지만, 진작부터 예상됐던 환경변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무책임한 변명이다.
서브 프라임 후유증을 '돌발 상황'으로 들이대는 것도 염치없다. 신용경색이나 자금 유출에 따른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할 때에도 은행권은 당장 돈이 되는 주택담보 대출이나 중소기업 대출 등으로 몰려 다니는 쏠림행태를 멈추지 않았다.
은행권이 늦게나마 공격경영 자제 및 위기관리 체제 전환을 내세웠다니, 이자와 수수료 등 구멍가게식 수입만으로 한 해 2조~3조원 씩 이익을 내온 태평성대가 끝나가는 걸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기왕에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면 외환위기 때 신용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듯이, 이번엔 유동성 관리의 중요성을 잘 새기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서민가계와 중소기업에만 부담을 떠안겨 금융시스템 자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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