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 형님과는 몇 번 대담을 했는데 둘은 성격이 다릅니다. 내가 외향적, 낙천적이라면 형님은 조용하고 겸허하죠. 하지만 살아온 얘기를 주고받다보면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린 둘 다 안을 떠나 바깥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방외인입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대표 작가 황석영(64)씨와 르 클레지오(67)씨가 3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만나 공개 대담을 가졌다. 2004년 페미나상 외국어 소설 후보로 올랐던 <손님> 을 비롯해 황씨 작품 여럿을 불어로 번역한 최미경 이화여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대담에서 두 작가는 서로의 작품과 여성, 문학 번역 등을 주제로 2시간 동안 의견을 나눴다. 9월부터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르 클레지오씨는 내년 1학기에도 한국에 머물며 교수직을 맡을 예정이다. 손님>
르 클레지오=경제적 궁핍 때문에 고향인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을 떠났고,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나이지리아, 라고스 등지로 옮겨 다녔다. 하지만 늘 모리셔스 섬을 고향이라고 여겼고, 언젠가 돌아가서 내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우리를 방외인으로 만드는 것 같다.
황석영=89년 방북 후 베를린에 망명해 있으면서 민족, 국가로부터 놓여났다. 남한 정부로부턴 국가보안법으로 수배 당했고, 직접 가서 본 북한의 실상은 실망스러웠다. 작가는 국가와 국경에 구애받는 존재가 아니다. 선생의 말을 빌면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일 뿐이다. 4년 가까운 런던 및 파리 체류도 자신과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 거리감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르 클레지오=현대 프랑스 문학은 젊은 여성 작가들로부터 활력을 얻고 있다. 큰 관념을 논하는 대신 일상에 대해 새롭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바리데기> 를 일부 읽었는데 사회와 역사에 바라보는 여성적 시각을 볼 수 있었다. 바리데기>
황석영=홀어머니의 맏아들로서 최근 몇 년까지도 ‘마초적 성향’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정원> 을 시작으로, 우리 문명에서 잃어버린 것이자 새로운 대안적 문명으로서 여성성을 얘기하려 하고 있다. 100여 년간 체계적으로 번역을 지원해온 일본과 달리 우리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실제 부딪쳐보면 한국문학과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원어민 번역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된>
르 클레지오=한국문화를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텍스트인 <삼국유사> 의 불어 번역이 4년째 진행 중이다. 빨리 진행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추진할 일이다. 삼국유사>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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