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가 실러는 200여년 전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했다. 5월29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한국일보에 매주 화요일 문화평론 ‘상상’을 연재한 진중권(44) 중앙대 겸임교수는 그의 논지에 동의를 하건 안하건, 실러의 명제에 어긋나지 않는 글쓰기를 보여줬다.
특히 대중적 성공을 거둔 심형래 감독의 <디워> 에 대해 “솔직히 말해 봐주기 좀 민망했다”며 혹평한 칼럼 ‘심형래의 디워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 (8월14일자)는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동료 지식인들의 비판까지 가세했지만 진 교수는 ‘대중의 반란’ ‘이른바 대중지성에 관하여’ 등 후속 칼럼을 발표하며 대중에 대해 지식인이 취해야 할 태도를 단호하게 보여줬다. 디워>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인데 상처 받거나 혹은 변심의 유혹을 받지는 않을까? ‘상상’ 연재의 마감을 즈음해 가진 인터뷰에서 진 교수는 “나는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다. 사랑을 받는 것은 스타들의 몫이지 ‘먹물’들이 추구해야할 일이 아니다. 먹물들은 대중들의 사랑이 아니라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말로 소신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렸다.
그는 미국에서 개봉한 뒤 대중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참패한 <디워> 의 말로를 거론하며 “( <디워> 를 옹호하던)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갔느냐?”고 되물었다. 그 논쟁은 마치 황우석 사태처럼 우리 대중의 몸에 새겨진 ‘구술문화적 습속’이 빚은 촌극이라는 게 진 교수의 주장이다. 디워> 디워>
구술문화적 습속이란 신화와 영웅담을 동경하는, 문자문화 이전의 주술적 습속이다. 그 습속을 가진 공동체는 이성보다 열정이 강하고 기원과 염원이 지극하면 공동체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진 교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더라도 지식인과 대중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며 “나는 나의 발언을 했을 뿐, 비난을 자처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물리학자가 대중을 설득시키면서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듯 미학자인 자신은 자신의 영역에서 그 영화를 평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식인이 그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회의 우중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엘리트주의자일까? “대중은 두 가지 성향을 모두 지닌다”는 그는 “디워 사태 이후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격려편지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집단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우중이 있는 반면 식견을 쌓은 ‘대중지성’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활자로 된 사전을 능가하는 인터넷 사전인 위키피디아를 편찬하는 대중들이 그렇다. ‘활자문화의 습속’ 이 새겨진 이들 사전편찬자들은 공동체로 활동하지 않는 고독한 개인들이다.
‘구술문화’에는 분명히 참여와 열정이라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 장점을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냉정한 이성의 인도는 불가결하다고 했다. 대중의 비난이 들끓게 되면 침묵하거나 수위를 조절하는 지식인들의 성향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대중들의 ‘열정’을 ‘꿈’으로 이끄는 내비게이션 역할은 이성이 담당해야한다” 며 “그것은 지식인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사람을 호감과 비호감으로 나누어 판단하기보다는 ‘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저 사람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이성적인 사회로 거듭나야합니다.” 진 교수는 “앞으로도 왕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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