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다투지 않지만 사실 암암리에 싸우죠. 그게 곧 연출과 작가의 관계 아니겠어요?”
어머니의 진지한 말투에 아들은 “우리가 언제 싸웠느냐”며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어머니인 극작가 김청조(62)와 연출가 아들 양정웅(39)과의 만남은 시종일관 웃음과 함께 했다. 모자는 13~15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선동> 의 연출과 극작을 맡았다. 작품을 같이 하기는 천상병 시인의 삶 다룬 연극 <소풍> 이후 2년 만이다. 소풍> 선동>
■ 아들은 깊이를, 어머니는 생략법을 배웠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연극 <선동> 은 안산과 관련이 깊은 인물 김홍도를 소재로 한 이미지극이다. 이미지극의 대명사인 양정웅에게 연출 제안이 들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몇 차례 고사 끝에 작품을 맡게 된 그는 극작가로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동>
“어머니가 김홍도 열병을 앓으셨어요. 6년 전부터 한국화를 배우시더니 김홍도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2005년에 그랬던 것처럼 연륜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글이 연극의 깊이를 더해주리라 생각했고요.”
어머니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극작을 맡겨준 데 감사할 따름이죠.”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께 일을 하면 없던 갈등도 생기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모자는 서로를 칭찬하느라 바빴다. “2005년 <소풍> 준비 중에는 실제로 조금 갈등이 있었어요. 한번은 어머니께서 사흘간 말씀을 안 하시더니 어느날 ‘그 부분을 왜 잘라냈냐’면서 버럭 화를 내셨죠. 작품을 보시고 난 후엔 잘했다고 하셨지만요.”(양) 소풍>
“제가 참 아끼는 장면이었는데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전체적인 흐름이 무척 자연스러웠어요. 아, 젊은 연출가와의 만남이, 또 생략법이란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싶더군요. 그러니 지금은 싸울 일이 없어요. 전적으로 믿고 맡기죠.”(김)
■ 모자는 전방위 예술가
두 사람이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된 계기가 된 <소풍> 은 작품의 성과도 좋았다. 196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김청조에게 연극 <소풍> 은 희곡 데뷔작이었다. 환갑의 나이에 데뷔해 첫 작품으로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거머쥐었다. 소풍> 소풍>
“원래 연극을 좋아했어요. 소설가로 활동한 것도 소설, 희곡, 시 등 여러 장르의 글을 한꺼번에 써서 이곳저곳에 응모했는데 그 중 소설이 먼저 뽑힌 거였거든요.”(김)
지난해는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영화 촬영을 배우고 독립영화 예술감독을 맡아 상을 받기도 한 어머니다. 양정웅은 “이제 보니 내가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게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라고 거든다.
■ 연극에 바치기 위해 낳은 아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작품보다 ‘한국 연극 최초의 영국 바비칸센터 공식초청’, ‘이집트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 대상 수상’ 등 외국의 평가에 집중되는 게 못마땅하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지도 못하고 연극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연극에 바치려고 얘를 낳았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아들이 하는 작품 이야기보다 화려한 경력에만 초점이 맞춰지니까 이런 노력이 묻히는 것 같아 답답하지요. 한 집에 살면서 제대로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쁜 걸요. 오죽하면 제가 기사 검색을 통해서 아들의 스케줄을 확인한다니까요.“(웃음)
“양정웅은 내 아들이기 이전에 연극계의 일부”라는 비장한 어머니의 말에 아들은 “어머니께 살갑게 대하지 못해서 저런 말씀을 하시나 보다”며 멋쩍어 했다. 그래도 “오늘과 내일이 다른 연극은 삶과 똑같아서 매력적”이라는 아들은 “어머니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거대담론을 다룬 연극을 계속 하고 싶다”고 한다.
어머니의 희망은 무엇보다 관객이 김홍도를 알게 하는 일이다. “전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연출가 양정웅은 예측할 수 없어서 무척 역동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들을 통해 연극에 대한 제 인식까지 달라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관객들도 꼭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김홍도를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사진=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