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선 후보 A씨의 첫 유세가 열린 대구 칠성시장. 첫 유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청중이라고 해봐야 오가는 이를 다 합쳐 수백 명. 선거운동원 몇이 목이 터져라 연호를 해보지만 대부분 청중의 표정은 무심했다.
왕왕 울리는 스피커 쪽으로 시선 한번 주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커피 팔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하나도 안 팔린다. 2002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17대 대선이 1일로 D-18일 맞았지만, 현장에는 대선이 없다. 중앙당 차원에서 언론을 통해 치고 받는 공중전(空中戰)만 치열할 뿐, 현장에서의 조직적 움직임은 좀체 찾아 보기 어렵다. 모임도 없고, 유세 현장도 썰렁하다.
그래서 “길거리의 플래카드만 없다면 코 앞에 대선이 다가 왔는지 알 수조차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5년 전 이맘때는 각종 동창회나 향우회, 계모임이 가장 활발했을 때”라며 “하지만 요즘에는 밥 먹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선거법으로 돈이 꽁꽁 묶인 데다, 2002년 차떼기 학습 효과가 있는 각 당이 극도로 몸조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B당의 핵심 관계자는 “2002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각 지구당에 몇 억씩은 내려보낸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번에는 각 지역에 공식 신고비용 외에는 일절 돈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이 안 풀리니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전 같으면 각종 모임을 잇따라 열고 지지자를 확보해 입당원서를 받는 게 당 하부조직의 중요한 일과 였다. 그래서 후보의 지방 유세 일정이 잡히면 이들을 일시에 동원, 바람 몰이에 나서는 게 선거운동의 공식이었다. 중앙당에서 내려보낸 돈이 조직을 돌리는 연료였던 셈이다. 돈이 잘 써지는지 체크 하는 ‘암행어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는 이런 게 거의 사라졌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C당 충청지역 지구당 관계자는 “입당원서 받으려면 돈 몇 푼 집어줘야 하는 데 요즘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다 보니 대선 특수를 기대하던 식당들은 영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고 울상이다. 대구 수성구의 한 횟집 직원은 “옛날에는 이맘때면 20, 30명 단체 손님이 줄을 이었는데 오늘 겨우 12명 단체 손님이 최고”라고 말했다. 전북 군산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도 “과거 총선이나 지방 선거와 달리 선거관련 단체 손님은 한 팀도 없다”며 “선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을 못 모으니 유세장은 썰렁해질 수밖에 없다.한나라당 대전시당 관계자는 “이제 사람을 시켜 인원을 동원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전화를 통해 참여를 독려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A당 유세팀의 한 관계자는 “유력 인사를 지원 유세차 내려 보내겠다고 통보 하면 당협위원장이 직접 전화가 와서 ‘우리 쪽에는 안 오셔도 된다’고 거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들을 동원하기 어려운데 괜히 중앙에서 사람을 불렀다가 책잡힐 것 같아서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선 풍토의 변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선진국 치고 민생 현장에서 떠들썩하게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나라는 없다. 차분한 분위기의 대선은 정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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