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육문제를 고민하던 한 평범한 아버지가 감성놀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굴지의 교육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변신했다. 바로 이재환(41) 위즈코리아 대표다.
이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섬유무역업체에 입사해 최연소 해외팀장이 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았던 우등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1996년 12월 이 대표가 사내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따는 날, 공교롭게 그는 사표를 냈다. “정말 아이러니였어요. 섬유산업을 공부하려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으니까요.”
사표를 냈지만 그는 ‘본업’에서 바로 손을 떼지 못했다. 동업자와 섬유무역 업체를 차린 그는 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환율이 2배 이상 뛰는 바람에 그의 표현대로 ‘돈을 부대자루에 쓸어 담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자식 교육이라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2000년 당시 조기영어와 창의수학 등 조기교육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교육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영어, 수학 등 전문학원 4곳을 가맹점으로 등록해 사업을 했지만 1년 만에 나온 결론은 ‘내 아이를 이런 곳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연필도 제대로 못 쥐는 어린아이에게 영어단어를 외게 하고, 수리개념보다는 계산에만 몰두하는 교육에 아이들의 창의성과 잠재력이 고사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감성입니다. 지금 조기교육은 어린 아이들을 고3수험생으로 만드는 것뿐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연구한 끝에 2003년 11월 감성놀이 학교인 위즈아일랜드를 설립했다. 지식이 아닌 감성을 발달시키는 유치원이자 문화원 같은 곳이었다.
위즈아일랜드는 올바른 조기교육을 고민하던 신세대 학부모들로부터 인기를 끌어 설립 4년 만에 전국 54개, 해외 6곳의 가맹점을 둔 교육문화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우리식 순수 국산 교육콘텐츠를 해외에 처음 수출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해외에 거주하는 국내 주재원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이 몰려 놀랐다”며 “미국 현지 중산층들이 위즈아일랜드의 흥미로운 교육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가맹점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필수로 할 만큼 민간외교관이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북한 평양에도 위즈아일랜드를 설립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남북교류가 활성화하면서 교육문제가 남북관계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라며 “남북한 어린이들의 이질적인 문화를 한데 어우르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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