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브리트 일너ㆍ잉게 브로더젠 편저, 이재영 옮김 / 이룸출판사ㆍ248쪽ㆍ1만1,000원기자·앵커 등 독일 현직 언론인이 말하는 미디어 세계
저널리스트의 세계가 여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면 그건 순전히 ‘제 4의 권력’기관으로서 언론의 힘에 대한 경외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정권의 부패를 파헤치고, 여론을 형성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서 구해내기도 하는 저널리스트의 활동은 흥미진진한 영웅담이나 명탐정 소설처럼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 세계에서 정직과 용기, 끈기, 명석함은 언론인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실제 그럴까?
<체 게바라, 방송을 타다> 는 저널리스트의 세계를 다루되 무대 뒷편의 진솔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방송사 앵커, 스포츠중계 리포터, 연예가십 기자, 정치평론가, 종군기자, 인터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유명 현역 저널리스트들이 직접 쓴 글들은 글쓰기 방식이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 이지만 현장 언론인으로 살아가기의 단맛과 쓴맛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미덕을 갖췄다. 체>
예를 들어 독일의 스타급 스포츠중계 리포터는 기고만장한 축구 스타를 인터뷰하는 일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한마디 말을 듣기 위해 삼십대 남자가 이십대 젊은 백만장자 뒤를 좇는 것은 사실 우울한 일이다.’ 톱스타들의 인터뷰로 유명해진 연예 기자는 ‘스타와 대중언론은 마치 실과 바늘 같은 관계’라면서도 ‘스타들이 보여주는 자화상은 더 이상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매니저와 연예기획사들이 만들어낸 모습’이라며 씁쓸해 한다.
그러나 세상이 달려졌어도 저널리즘의 원칙은 여전히 존재하고 유효하다.
목숨을 걸고 카메라에 담은 팔레스타인인 집단수용소 사진이 지면 한구석에 쳐 박힌 것에 낙담하면서도 사진기자는 ‘그럼에도 세계를 처음 정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번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쿠바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에 찍은,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사진 한 장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전설적인 사진을 찍으려는 꿈 때문이다.
또 세르비아에서 자행된 회교도 남성 2000명 학살 사건을 보도한 종군기자는 왜 상상하기도 끔찍한 전쟁터를 누비며 사는가에 대해 이런 답을 내놓는다. ‘우리가 불의와 고통, 전쟁의 부당함에 눈을 감을 수 없다면 이 일은 분명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팝아트처럼 경쾌한 삽화에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글, 저널리즘에 대한 녹녹치 않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책. 아쉬움이라면 구미가 확 당기는 표제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생각은 애당초 말아야 한다는 것 정도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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