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아는 글자수가 5,000개가 채 안됐습니다. 베이징사범대 교수가 <허삼관매혈기> 를 분석했는데 15만자짜리 이 소설에 쓰인 글자 종류가 386자뿐이라더군요. ‘위화는 간결한 표현을 즐긴다’고 말하는 비평가에겐 ‘아는 글자가 적어서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줍니다.” 허삼관매혈기>
중국 베이징에 있는 소설가 위화(余和ㆍ47)씨의 재치있는 입담에 서울의 독자들이 박장대소했다.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지문화원 사이’에선 40여 명의 독자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베이징 사무소를 찾은 위씨와 인터넷을 통해 화상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외국 작가와 국내 독자와의 원격 만남이란 점에서 유례 없는 행사로, 매달 작가와의 대담 행사를 열고 있는 문화기획단체 ‘퍼슨웹’과 위씨의 장편 <형제> 를 펴낸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공동 기획했다. 형제>
2시간 동안 진행된 화상 대화에서 독자들은 주로 <형제> 에 담긴 작가의 생각을 물었다. <형제> 는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기란 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두 형제 이광두-송강이 출세와 몰락의 엇갈린 운명을 맞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 순수한 성품의 송강을 꼭 자살하는 것으로 그려야 했냐는 질문에 위씨는 “고등학교 친구 2명도 개혁개방의 사회 변화에 적응 못하고 자살했다”며 “이광두-송강의 운명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점은 사회가 급변하면 인간의 운명 역시 변화를 맞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떠들썩하게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386세대가 돈벌이에 몰두하며 사는 현실도 마찬가지 이치”라고 덧붙였다. 형제> 형제>
독자와의 화상 대화를 마친 후 위씨는 기자와 별도로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형제> 를 낼 때까지 10년의 공백이 있었다. 형제>
“절필했었다고도 하던데 오해다. 완성하지 못한 장편이나 단편, 수필 등을 꾸준히 썼다. <허삼관 매혈기> (1996) 이후 해외로 작품이 많이 소개되면서 외국에 드나들 일이 많아졌다. 장편 쓰는데 필요한 일관된 리듬이 끊어져서 창작에 애로가 있긴 했다.” 허삼관>
-국내 일각에선 “중국 소설은 우리 60, 70년대식 리얼리즘”이란 식으로, 미학적으로 낙후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국 내에서도 그런 질문 많이 받았다. 그런데 유럽, 미국에서는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 작품에 대해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며 놀라워한다.”
-당신은 평소 ‘고난 속에도 즐거움이 있다’고 하고, ‘화려함 속에도 고난은 있다’고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가 전자에 관한 얘기라면, <형제> 는 후자에 관한 얘기로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강하다. 중국에 비판적인 서구 독자들을 의식한 것 아닌가. 형제> 허삼관> 살아간다는>
“중국의 현실은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는, 한마디로 불확정적인 현실이다. 난 <형제> 를 통해 내 나름대로 이해한 중국의 현실을 그린 것뿐이다. 중국 독자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수많은 세계 독자들을 고려하겠는가(웃음).” 형제>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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