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 웨스턴 지음ㆍ뉴스위크 한국판 옮김 / 뉴스위크 한국판 발행ㆍ391쪽ㆍ2만5,000원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고어가 대결했던 2000년 미국대선 TV 토론의 한 대목. 고령자 의료보장제도를 놓고 두 후보가 날선 공방을 벌였다.
고어는 “부시의 의견에 따르면 납부 보험료가 18~47%나 올라갑니다. 고혈압과 심장 처방약을 구입할 수 없는 연 소득 2만5,000달러인 노부부라도 내 계획에 따르면 비용 절반이 곧바로 지급됩니다”라며 부시를 공격했다. 그러나 부시의 반격은 이랬다
. “이분은 늘 숫자로 얘기합니다. 인터넷을 발명했을 뿐 아니라. 계산기까지 발명했나 봅니다. 유권자들을 겁주는 워싱턴 정가의 이런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를 그냥 두고 보기 힘드네요.”
고어는 8년간 부통령직에 있으며 현안이라는 현안은 모두 꿰뚫은 ‘준비된 대통령 후보’였지만 이 토론에서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아닌 냉담한 정책가’의 이미지로 비춰졌다. 반면 부시는 ‘계산기’ 유머를 통해 그가 틀에 박힌 워싱턴정가의 정치인이 아니며 다음 4년 동안 국민을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인물로 각인됐다.
인지심리학 박사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컨설턴트인 저자는 이 토론이 린든 존슨(1963~1969) 대통령 이후 재선 대통령을 단 한 차례만 배출한 민주당, 단 한 차례만 재선 대통령을 내지 못한 공화당의 명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감성적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 지도자에게 감동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일관되게 유권자의 감정에 소구한 공화당의 선거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라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숫자나 통계를 나열하며 유세를 펼친 민주당 후보들이 번번이 고배를 마신 것은 당연하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대선의 승패를 결정한 요인들을 조목조목 뜯어보는데,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유권자의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도록 후보자의 단어사용 하나, 표정 하나, TV 광고의 배경음악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관리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듀카키스와 부시의 대결 때(1988)처럼 때로 백인 유권자들의 인종적 편견을 슬쩍슬쩍 자극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금세기에 성공한 민주당 지도자들도 유권자들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변정담’을 통해 대공황의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흑인 민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청년시절 차별받는 멕시코계 어린이들을 보며 느낀 분노를 주제로 의회연설한 린든 존슨 대통령, 명문 예일 출신이면서도 그것을 알리지 않고 남부 시골동네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란 자신의 유년시절을 강조한 TV광고를 내보낸 빌 클린턴 등이 그들이다.
유권자들은 명백히 자신의 경제적 이해보다도 도덕이나 윤리와 같이 감정을 자극하는 문제에 흥분하며 투표한다. 그것은 미국정치에서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법칙이다. 안타깝게도, 책은 우리에게 ‘민중은 비이성적이다’ 라는 역설을 재인식시켜준다. 원제 ‘The political brain’(2007)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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