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지음 / 휴머니스트 발행ㆍ 344쪽ㆍ1만7,000원
조선시대에는 9대 간선로라고 해서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길이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 서울로 이어진 영남대로이다. 영남대로는 임신왜란 당시 왜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했던 길이자,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하던 길이다. 영남지역 선비가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기도 했다. 조선의 영광과 상처가 이 길에 고스란히 담겼다.
문화사학자이자 신정일씨가 쓴 <영남대로> 는 바로 그 길의 원형을 찾아 직접 발로 걸으며 우리 역사와 문화의 속살을 더듬어 간 답사기이다. 영남대로>
저자는 부산 동래향교에서 출발, 서울 숭례문에 이르는 길을 하루도 거르지않고 꼬박 15일간 걸어서 갔다. KTX를 타면 2시간 반, 고속도로를 차로 달려도 5시간 남짓이면 주파할 수 있지만, 꼬박 열나흘을 걸어서 갔다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여정을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
영남대로에서 저자는 길 위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더듬는다. 청도읍성에서 대구 악령시 가는 길에 세시풍속중 하나인 반(半)보기 풍습이 유래된 군자정에 들러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떠올린다.
반보기는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외부출입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그리운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고안해낸 일종의 ‘길 중간에서 만나 회포 풀기’이다. 곳곳에 소개된 <동래부지도> <충주목지도> <경강부임진도> 등 고지도는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강부임진도> 충주목지도> 동래부지도>
길은 삶의 흔적이자 현재의 삶을 품는다. 길이 넓어져 가게가 망해간다는 음식점 주인의 하소연, 밥값 2,000원만 받으며 불우이웃을 돕는 대구 팔달시장의 할머니집 식당, 도시 난개발을 걱정하는 판교 토박이의 한숨 등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때로 힘차게, 때로 무겁게 재촉한다.
도처의 옛길이 아스팔트로 덮여져 원형을 찾아 걸을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개나 고양이 너구리 등 짐승들의 길위에서 비명횡사하는 로드킬은 물론이고 지방도나 국도를 따라 걷기는 사람에게도 목숨을 내놓을 만큼 위험한 일임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빠름을 선택하지 않고 열나흘 동안이라는 느림을 선택하는 순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던 수많은 사물들이 말을 걸어온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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