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대통령선거까지. 최근 몇 개월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마다 늘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김만복 국정원장. 김 원장은 23일로 취임 1주년을 맞지만 그가 취임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그의 1년은 그만큼 성과도 많았고, 논란도 많았다. 오죽하면 "장세동 이후 가장 유명한 국정원장"이라는 말이 나올까.
김 원장은 지난해 11월 내부 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국정원장에 취임했다. DJ정부에서 잘 나가던 국정원 실세였던 그는 2002년 세종연구소로 사실상 좌천되면서 고비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났고, 참여정부 출범 후 그를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자리를 옮기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4년 친정으로 돌아간 김 원장은 기조실장(차관급)과 1차장으로 승승장구, 친정복귀 2년9개월 만에 원장자리까지 꿰찼다.
취임 당시에는 김 원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참여정부 임기 말 국정원장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데다 이 전 장관과의 인연으로 버거운 자리에 앉았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지난 1년 동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 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납치되고,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없다'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 속에 피랍자가 하나 둘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무장단체와의 막후 협상을 주도, 21명의 무사귀환을 이끌어 냈다.
정상회담은 추진부터 10ㆍ4정상선언 도출까지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170여일을 끌었던 소말리아 피랍 선원들의 석방도 국정원의 작품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성과에는 항상 논란이 뒤따랐다. 아프간 사태 해결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언론에 노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또 고향 기장군 주민들을 수차례 국정원에 초청하고, 지역행사를 챙겼던 사실이 드러나 사전선거운동 논란이 일었다.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면서 지나치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굽실만복'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대선을 앞두고는 국정원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친ㆍ인척에 대한 개인 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 원장은 취임 1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국정원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 정보를 대변하는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초일류 글로벌 정보기관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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