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이 해외기업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유가 행진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투자청이 26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대규모 손실을 입은 시티그룹의 지분 4.9%를 75억 달러에 매입한 것은 오일 달러의 위력을 보여준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다.
현재 산유국들이 전 세계에 투자한 액수는 4조 달러(한화 약 3,600조원)에 이른다. 올해로 5년째 지속 중인 고유가로 인해 산유국들의 기업 사냥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28일 보도했다.
■ 6영향력 커지는 오일 달러
산유국들의 오일달러 투자는 기업 사냥 외에도 부동산,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전방위로 손을 뻗치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두바이증권거래소는 현재 나스닥과 북유럽 증시운영사가 합병한 회사 지분의 20%를 매입하기 위해 협상 중이고 카타르도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UAE의 투자회사들은 9월 칼라일그룹 지분의 7.5%를, 지난달 뉴욕의 헤지펀드 오크지프 캐피털의 지분의 9.9%를 사들인 데 이어 이 달에는 컴퓨터 부품회사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스(AMD)의 지분 8%를 인수했다. 산유국들이 대주주로 있는 세계적 기업으로는 뉴스코퍼레이션, 프록터 앤드 캠블, 펩시, 타임워너, 월트디즈니 등이 손꼽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산유국들의 입김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아부다비투자청의 시티그룹 지분 매입 소식이 전해지자 폭락하던 미국 증시는 단숨에 낙폭을 만회하면서 상승장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시티그룹의 찰스 프린스 최고경영자(CEO)의 퇴진 때대주주인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기업들을 거느린 산유국들의 위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예들이다. 미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에너지 전문가 에드워드 모스도 “네덜란드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중동 국가들이 석유수출로만 매주 5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린다”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 안보 영향 경계하는 선진국
맥킨지 글로벌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산유국들은 최근 달러화 약세로 달러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자 미국 중심에서 전 세계로 투자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지난해 유럽을 주요 투자지역으로 정했고 아시아와 중동, 북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도 25%에 달한다. 에너지컨설팅 업체 PFC 에너지의 로빈슨 웨스트 회장은 “산유국의 전 세계적 투자는 역사적 차원에서 부의 이전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지역 다변화는 달러화 약세가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기업 사냥에 대한 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UAE의 두바이 포트월드사는 지난해 미국 항만운영권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려고 했던 당시 미 의회와 여론의 반발에 부딪쳐 인수를 포기했다. 올해 두바이증권거래소가 나스닥 지분 매입에 나섰을 때에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번 거래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것”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오일 달러 수혜국인 러시아가 유럽을 가로지르는 송유관 및 에너지 관련 인프라에 대한 관심을 보이자 유럽 국가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산유국들의 오일 달러는 최근 신용경색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세계경제에 있어 유동성 확보와 저금리 유지를 돕고 있다. 그러나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대부분의 산유국들이 해외 투자에 대한 공개를 꺼리고 있어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유국 입장에서도 국내경기 과열과 자산 버블 위험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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