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눈 앞에 나타나 ‘세상에서 꼭 사라져야 할 세 가지’를 묻는다면? 두 가지는 비교적 쉽게 답이 나온다. 명절과 아내 생일. 그런데 세번째가 쉽지 않다.
실존적 결단(!)의 고통 끝에 고른 마지막 한 가지 답은 ‘연말연시’. 술과 노래방, 시끌벅적한 파티가 싫다면 이 선택에 백번 동의할 것이다.
캐롤과 구세군 냄비, 그리고 숙취해소제의 계절이 왔다. 일주일에 다섯번 잡힌 송년회, 멋진 ‘이벤트’를 기대하는 주변의 분위기가 지뢰처럼 매설된 시즌이다.
그러나 피해갈 방법은 없다. 찬란히 떠오르는 새해 아침을 맞기 위해선, 어떻게든 이 지뢰밭을 통과해야 한다. 지혜롭게 이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 연말 시즌이면 편두통이 생기는 박○○(38) 과장의 24시간이 있다. 제약회사 영업직. 해마다 누구보다 ‘뻐근한’ 연말을 치르고 있지만, 솔직히 달력에서 12월을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이다.
어쩌면 당신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박 과장의 연말 24시를 미리 들여다본다. 술과 가무, 이벤트에 관한 전문가들이 박 과장의 24시간에 빨간펜을 들고 줄쳐 가며 연말에서 살아남는 팁을 일러준다.
#오후 7시 30분
어제 마신 술이 쓰나미처럼 위장을 훑고 지나간 지 겨우 한나절.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오늘은 중요한 거래처와의 회식 자리다.
적당히 몸을 사리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다사다난했던…”으로 시작하는 ‘국민의례’가 끝나고, 술잔이 돌기 시작한다. 소주가 몇 순배 돌더니, 이내 ‘퐁, 퐁…’ 작은 잔이 큰 잔에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현란한 손놀림도 아무리 기발한 제조법도, 결국 알코올에 알코올이 섞인다는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박 과장이 1차에서 받아 마신 ‘폭탄’만 이미 여남은 잔. 불판 위에서 몸을 비트는 고깃덩어리들이 되레 박 과장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듯하다.
☞팁
이 학생, 기본이 돼 있지 않다. 간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알코올 양은 80g 정도. 두홉들이 소주 1병의 양이다. 술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정 잔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물잔을 옆에 두고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술을 뱉는 방법으로라도 체내에 흡수되는 알코올의 양을 조절해야 한다.
와인이나 사케 등 알코올 도수가 낮고 몸이 견뎌낼 수 있는 술만 고집하는 주관도 때론 유용하다. 폭탄주를 마실 때는 처음 한두 잔을 제외하곤 힘들다고 고백하고 '뇌관'을 빼고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요컨대 술자리에선 '페인트 플레이'도 능력이다.
또 술을 마실 때 몸의 대사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는 모두 술에서 얻게 되므로, 함께 먹는 음식의 칼로리에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기름진 안주는 단순히 살이 찌는 것만 아니라 위와 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의학적 효과는 분명치 않지만 술을 마시기 전에 요구르트를 먹거나 숙취해소제를 마시는 것도 심리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오전 0시 20분.
맥주집에서 2차까지 치른 뒤, 집으로 가고픈데도 박 과장은 노래방으로 끌려 간다. 노래 부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이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직도 ‘열외’는 쉽지 않은 일. 열심히 분위기 맞추느라 탬버린만 흔들어대던 박 과장에게도 결국 마이크가 돌아온다. 사주쟁이 만세력 보듯 느릿느릿 노래책을 뒤지던 그가 선택한 곡은 로리 블록의 ‘Gipsy Boy’. 반주 시작되고 첫 소절 부르자마자, 분위기 ‘차악’ 가라앉는다. 1절을 무사히 끝내지 못하고, 박 과장은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만다.
☞팁
노래방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매너'. 연말 회식 분위기, 특히 초반이라면 무조건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매너다. 마니아들끼리가 아니라면, 정체 모를 팝송이나 헤비메탈 같은 노래는 절대 금지. 이승환의 '천일동안'처럼 러닝타임이 긴 발라드곡도 분위기를 처지게 만들고 만다.
최신곡에 둔감하다면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1년' 같은 리듬감 있는 R&B곡 정도는 무난하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싶으면 원더걸스의 '텔 미' 등 최신 히트곡을 불러주는 것이 좋다. 중간중간 열기가 식었다 싶을 때는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나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같은 노래가 번개탄 역할을 한다.
#오전 9시 40분.
새벽녘까지 이어진 음주와 가무로, 남은 것은 거칠해진 피부와 쉰 목소리. 새벽의 ‘오바이트’를 겪은 박 과장의 뱃속엔 맑은 식용유 같은 위액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식욕은 없다. 출근 뒤 그가 찾은 곳은 회사 1층의 커피전문점.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과 담배 한 대로, 그는 해장의 기쁨을 잠시 맛본다. 비몽사몽으로 오전 업무를 보는 박 과장의 머릿속엔, 점심 시간에 찾아갈 사우나 생각밖에 없다.
☞팁
술 마시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술 깨는 것이다. 음주 뒤의 나쁜 습관은 폭음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숙취를 가장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 그러나 커피 등 위를 더 자극할 수 있는 음료는 피해야 한다. 해장국도 효과가 있다.
콩나물국에는 알코올 분해 효소의 생성을 도와주는 아스파라긴산, 북어국에는 간 기능을 높여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포함돼 있다. 부추와 마, 바지락 등도 숙취 해소에 좋은 음식이다. 그러나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사우나는 매우 위험하다. 탈수 증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발만 담그는 '족탕'이나 가벼운 샤워가 좋다.
#오후 7시.
송년회를 겸한 대학 동창회. 강남에 위치한 ‘쿨’한 분위기의 스탠딩바에서 열렸다. 하지만 칵테일도, 시끄러운 음악도 낯설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박 과장에게는 폭탄주 잔처럼 부담스럽다. 코 앞에서 하우스 뮤직에 몸을 맡기고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1시간을 버티다, 박 과장은 결국 친한 동기생 한 명을 꼬드겨 포장마차로 향한다.
☞팁
아직도 파티가 '뻘쭘하다'고 느끼는 사람,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파티는 결코 두려운 행사가 아니다. 소개팅이나 첫 데이트 자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 어색함이 두근거림으로 바뀔 수 있다. 오픈 마인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혼자 가더라도 즐겁게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파티다. 파티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스타일리시하게 자신을 연출하는 것. 드레스코드가 있다면 거기 맞춰 옷을 고르고, 그렇지 않다면 다소 튀어 보이더라도 세련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홍재경(조선호텔 ‘그래머시 키친’ 점장)
황환식(한양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이도경(파티앤파티 대표)
허정헌기자 xscope@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 연말, 스케줄을 구조조정하라
다이어리에 빼곡히 자리잡은 술자리 약속들. 동문회에서 회사 송년회 모임, 여기에 가족모임까지 겹치다 보니 연말에는 오직 남을 위한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올해는 살 빼고 영어회화 마스터하자던 연초의 계획을 얼마 전까지 잘 지켜오던 사람이라도, 연말 약속과의 전쟁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관리가 필요한 한 해의 끝자락, 요령은 뭘까.
조성용 한국리더십센터 대표는 “일 년의 한 달만 남아있는 연말에는 너도 나도 스케줄이 쌓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때의 시간은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한 해를 위해 세웠던 일, 건강, 대인관계, 가정생활의 목표들을 파트별로 나눠 다시 기록해본 후 각각을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외에 남아있는 고민거리와 문제들도 직접 종이 위에 적어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약속을 미루고 개인만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 사회생활에 전념해야 하는 직장인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왕따’를 면하면서 자기관리에도 충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조 대표는 “약속과 스케줄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며 “스케줄 표를 만들어서 최소한 일주일에 3~4일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말 시간관리의 요체는 바로 스케줄의 구조조정! 꼭 만나야 하는 사람과 이메일과 편지로 안부를 묻는 정도로 괜찮은 사람을 분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래인재개발원 시간관리강사 최연씨는 “시간관리의 요체는 바로 시간을 구성하는 사건들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급하고 중요한 것,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것,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것으로 약속 및 스케줄을 정리해서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특히 연말에는 자칫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술 약속들이 일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시간관리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말연시 시간관리 7계명
1. 시간관리를 잘 해야 긴급한 일을 피한다.
2. 시간도둑인 술 자리를 피하기 위해 과감히 '노(NO)'라고 말한다.
3. 모임이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냉정하게 바라본다.
4. 의미있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들과 함께 계획한다.
5. 다음 해를 계획하기 전에 자신의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본다.
6.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체크하고, 너무 쉽지 않으면서 도전적인 목표를 세운다.
7. 작심삼일의 부담을 털어버려라. 작심삼일이 무섭다고 목표조차 세우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도움말ㆍ한국리더십센터>도움말ㆍ한국리더십센터>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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