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관료 시절 유연한 사고를 가진 시장주의자로 '찍혔던' 인물이었다. 지금은 민간 금융기관 책임자로 변신한 그에게 현장에서 느낀 경제현실에 대해 물어보자 "관료 시절 시장을 너무 모르고 정책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시장주의자라는 그가 이렇게 실토할 정도이니 관료의 정책과 경제 현실 사이에 얼마나 넓은 간극이 있는지 짐작이 된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초 저명한 컨설팅기관인 부즈알랜이 낸 한국보고서가 관료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일이 있었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예고한 것으로 유명한 이 보고서는 관치금융을 청산하기 위해 재정경제원의 해체를 과감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경원은 지금의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친 조직으로 나머지 정부 기관이 모두 힘을 합쳐도 당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했다.
경제를 한 손에 장악한 거대 관료조직의 비대함과 경직성은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고, 당시 관료들은 외환위기 주범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 외환위기에도 변하지 않은 관료의 힘
참담한 국난을 치룬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에는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은 재정적으로 안전하고 탄탄해졌다.
반면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초래한 경제의 양극화는 많은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비정규직 같은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불렀다.
그 격변의 10년을 거치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관료사회와 그들의 막강한 영향력이 아닐까. 외환위기를 부른 정책적 과오나 외환은행 헐값 매각 같은 문제들은 "정책적 실패는 처벌할 수 없다"는 면죄부를 받아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신용대란을 부른 카드사태도 그렇게 넘어갔고, 집값 폭등으로 엄청난 후유증이 생겨도 책임을 지는 공무원은 없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관료사회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모든 사회 기득권이 개혁대상이 됐지만 관료 사회의 기득권은 무풍지대로 남았다.
필요하면 조직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고, 정책적 실패가 있더라도 고위층에서 언론의 비난을 개의치 않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군림하려는 관료들에게는 규제가 필요하다.
까다로운 규정과 절차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무원 도장은 위력을 더한다. 참여정부는 규제혁파를 약속했지만 출범초기 7,838건이던 규제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8,083건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규제를 무조건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원칙과 엄격한 규율은 시장경제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규율이 아니라 관료의 자의적 잣대에 좌우된다. 감독기관 한마디에 기업의 경영전략이 무용지물이 되고, 관료들에게 미운 털이 박히면 곧바로 정을 맞기도 한다.
금융감독당국이 최근 은행에 가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출 자제 압력은 그런 점에서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개인대출이 막혀 자금운용이 어려워진 은행들이 일시에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현상은 자산건전성 측면에서 금융당국이 우려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감독당국이 특정 대출을 줄이거나 늘리라고 '지시'하는 행태는 아직도 은행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격이다. 은행들이 일제히 중소기업대출을 줄인다면 선의의 피해를 입는 기업들이 속출할 우려도 높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은 규정을 제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칙(페널티)을 가하는 것이다. 선수들의 행동까지 일일이 간여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감독기관은 기준과 룰을 제시하고, 그 위반여부만 감독하면 그만이다.
● 군림하는 권력 자리에서 내려와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에서는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비즈니스라는 자동차 앞에 시속 10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관료주의가 가로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관료들은 군림하는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한국 사회를 관료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은 차기정부의 제 1과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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