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사고로 왼쪽 팔을 잃은 박만도는 아침부터 설렌다. 삼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6ㆍ25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아들이 병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아들은 한쪽 다리가 잘려진 모습이었다. 부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오는 길에 아들은 "부자가 이래 가지고는 어찌 사느냐"고 한탄한다. 그러나 만도는 "앉아서 하는 일은 네가 하고, 나다니며 하는 일은 내가 하면 된다"고 위로한다.
외나무다리에 이르러 한 팔이 없는 만도는 다리 없는 아들을 업고 용케 몸을 가누며 건너간다. 작가 하근찬의 데뷔 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 의 줄거리다. 수난이대(受難二代)>
▦ 1999년 이병헌과 전도연이 출연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내 마음의 풍금> 이라는 영화가 있다. 강원도 산속 오지의 늦깎이 여자 초등학생 홍연 앞에 어느날 '남자'가 나타난다. 내>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총각 선생님이다. 홍연은 지나는 길에 우연히 자신을 '아가씨'로 불러준 선생님에게 운명적인 첫사랑을 느낀다. 천리 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남녀 사제 간의 사이는, 여러 에피소드와 우여곡절을 거치며 조금씩 좁아져 간다.
▦ 여러 세대가 공감한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의 원작 역시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 다. 순진할 뿐인 아버지와 아들이 비정한 역사의 진행 속에 엄청난 수난을 당하는 내용의 <수난이대> 와 역시 순진한 소녀가 겪는 첫사랑의 아름다운 승리를 그린 <내 마음의 풍금> 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겹고 궁벽한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다. 내> 수난이대> 여제자> 내>
그러나 하근찬은 순진한 인물을 낭만적으로 그리되,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이 겪는 민족적 비극이나 사회의 병리 현상을 날카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 원로 소설가 하근찬씨가 25일 향년 76세로 타계했다. 그는 자신이 주변에서 보고 느낀, 개인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삶을 애정과 객관성을 가지고 묘사한 정통적 소설가였다. 역사 속에 명멸한, 늘 수난을 겪는 용렬하리만큼 착한 사람들을 감싸 안은 작가였다.
그는 데뷔작 <수난이대> 가 대표작으로 꼽히는 한계도 있으나, 문단의 평가도 좋았고 문학상도 많이 받았다. 그의 타계가 특히 안타까운 것은 문학에서도 자기 영역을 공들여 지키는 이가 드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난이대>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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