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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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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입력
2007.12.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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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맨 지음ㆍ최기철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발행ㆍ352쪽ㆍ1만2,000원

블랙베리 휴대전화의 알람에 눈을 뜨면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켄우드 주전자에 물을 끓여 야마모토마타 녹차를 마신다.

맥 컴퓨터를 켠 뒤 아베다 샴푸로 머리를 감고 콜게이트 치약으로 이를 닦는다. 캘빈클라인 속옷에 리바이스 청바지, 헬무트랭 재킷을 입고 랄프로렌 양말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는다.

노스페이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 뒤 루이비통 지갑을 꺼내 에비앙 생수를 산다. 비비안웨스트우드 열쇠고리에 달린 열쇠로 사무실 문을 연다.

브랜드 이름만 바꿔넣으면 우리의 아침 풍경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이 일상은 스스로에게 ‘브랜드 중독’이라는 진단을 내린 영국 청년 닐 부어맨의 것이다. 패션잡지 편집장을 지낸 그는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자신이 싫어하는 브랜드인 푸마 운동화를 신었다면 아무 매력이 없다고 할 만큼 브랜드를 가치 판단의 토대로 삼아왔다. 버는 돈의 대부분은 유명 브랜드의 명품을 사는 데 썼다.

하지만 어느날 화장실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소비주의와 광고의 허상에 분노를 느끼고, 브랜드 중독증을 치료하기로 결심한다. 알코올 중독이었을 때 술을 마시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하수구에 술을 쏟아버리고 빈 병을 박살낸 것처럼 브랜드를 끊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브랜드 제품을 태워버리기로 한 것.

2006년 9월 17일. 런던 시내에서 치러진 화형식에서는 그가 끔찍하게 아끼던 루이비통 가방과 구찌 셔츠, 버버리 코트, 아디다스 운동화 11켤례, 샤프 LCD, 질레트 면도기까지 2만1,345파운드(약 4,000만원)어치의 물건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화형식을 중심으로 그 전후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담은 이 책은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보내는 경고다.

화형식 이후 그는 대체할 것이 전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브랜드가 없는 제품만으로 살았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술집, 극장 체인을 이용하는 대신 산책이나 미술관 관람, 친구집 방문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시장과 인터넷을 통해 브랜드 없는 의류를 구매했고, 도시락과 간식을 직접 준비했다. 루이비통 제품은 사실 푸마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며, 브라질 축구 스타들은 값비싼 축구화가 아니라 해변에서 맨발로 기술을 익혔으며, 이탈리아풍 파스타 소스인 돌미오는 영국에서 생산된다는 등 브랜드의 허상에 대해서도 짚어낸다.

이 책은 화형식 이후 150일째의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

여전히 쇼핑의 쾌감과 명품 소유에서 오는 만족감이 그립기도 하다는 저자는 “브랜드 제품 너머에 있는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열망으로 시작한 이 여정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는 IBM도 아니고 맥도 아닌, 단지 나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고 말한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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