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ㆍ감찰본부의 수사가 김용철(49) 변호사와 직접 관련된 범위에서만 뱅뱅 돌고 있다. "특별검사 도입까지 필요한 수사만 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이후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 기초적 수사조차 주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수본부는 일단 삼성측이 비자금을 운용한 통로로 의심되는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 수사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전국 87개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전수조사에 착수,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한 1997년 8월 이후 김 변호사 자신도 모르게 개설된 차명계좌 수십개를 찾아냈다.
더욱이 이중에는 최근 폐쇄된 계좌도 있는 것으로 확인돼, 실제 삼성측에 의해 비자금 통로로 활용됐을 것이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특수본부는 금융기관에서 입출금 내역을 건네 받아 실제 차명계좌였는지, 얼마나 많은 금액이 이 곳을 통해 운용됐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만일 삼성이 개설했다는 정황이 확인된다면, 특수본부의 삼성 관련 수사는 탄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삼성 전략기획실, 계열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특수본부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김수남 차장검사는 29일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은 확정된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변호사가 제시한 삼성SDI와 삼성물산이 해외물품구매 대행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기로 한 '메모랜덤'이 압수수색의 근거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만 말했다.
특수본부는 이날 김 변호사 차명계좌가 개설된 우리은행 삼성센터 직원 등 금융기관 관계자 4,5명만 소환 조사 했고, 삼성 관계자 소환 조사는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특검 도입을 지목하며 "필요한 수사"를 거론했던 특수본부가 그 범주를 오로지 직접 증거가 제시됐고, 본인 동의 하에 계좌추적에 나설 수 있는 김 변호사 관련 범위로만 국한해 수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 수사에서 삼성과 연결된 흔적이 나온 뒤라야 삼성쪽으로 수사의 범주를 넓히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것이다. 김 변호사 주장 외에 추가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삼성 계열사 압수수색, 삼성 사장단 계좌추적 등에 나섰다간 '과잉수사' 논란이 나올 수 있는 점을 우려, 극히 소극적 수사로 방향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사건 고발인인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는 "삼성이 증거자료를 폐기하는 상황에서 이는 검찰의 임무 방기"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은 이날 특수본부에 고발인 진술서를 내며 "특검이든 검찰이든 불법행위 혐의를 신속하게 수사하지 않는 것은 공권력으로서 기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즉각 삼성 본사 압수수색, 관련자 소환 조사를 주장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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