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본보-3개대학 학보사 공동기획/ 2007 대선 '현장의 대학생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본보-3개대학 학보사 공동기획/ 2007 대선 '현장의 대학생들'

입력
2007.12.03 00:34
0 0

■ 조용한 캠퍼스… "우린 정치 관심 없어요"

#1. 대학생 대선 캠페인 단체 ‘위키(WEKI)’의 원창희(21ㆍ연세대 경영2)씨는 대선에 대한 대학생들의 무관심에 점점 기운이 빠진다. 그는 “12월19일이 무슨 날이냐는 질문에 10명중 6~7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고 말했다.

#2. 모 정당의 대학생 정책자문단에서 일했던 대학생 김모(22)씨는 얼마전 자문단 활동을 그만뒀다. 김씨는 “취업과 등록금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정책에 반영해 보고 싶어 가입했지만 석달 넘게 정책 얘기는 거의 없었다 ”고 말했다.

17대 대선을 보름 앞둔 2일 대학가는 너무나 조용하다. 학생들의 대선 참여를 독려하는 대자보나 대선 후보, 정당들의 지지 호소 팸플릿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대학생들의 무관심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가 해도 너무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대 대선 당시 모 정당의 선거 운동원으로 참여했던 윤범기(30)씨는 “캠퍼스 안팎에서 투표 참여 이벤트를 하면 학생들의 호응이 꽤 컸다”며 “이번 대선은 그 때에 비해 너무 조용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대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국 16개 대학 학생대표들이 구성한 ‘대학생유권자행동’이 지난 10월 서울지역 대학생 1,0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2.2%가 ‘투표하지 않거나 상황을 봐서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나마 현장에 뛰어든 대학생들은 행사 도우미 등 허드렛일에 동원되면서 ‘선거판 부속품’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정당들도 대학생들의 정치 무관심에 편승, 이들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부터 선거 연령이 만 19세로 낮아지면서 만 24세까지의 유권자들이 총유권자의 10.7%(399만6,300명)에 이르는데도 이들의 정치적 비중은 더 떨어지는 분위기다.

숭실대 강원택(정치외교)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은 좁은 취업문 때문에 학점, 등록금 문제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다”며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모든 문제는 개인으로 환원되고 집단적 목소리를 내려는 의식이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대선전에 뛰어든 대학생들도 좌절감을 맛보기 일쑤다. 한 정당의 대학생 홍보단이었던 대학생 진모(21)씨는 “대학생 100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얻어오라는 지시를 이행하느라 바빴다”며 “평소에 선거나 정당에 관심이 없던 상태에서 그저 이력서에 한 줄 올려보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정선거감시단원으로 일하는 대학생 박모(24)씨는 “하루 종일 차를 운전하거나 걸어 다니다 보면 선거의 중요성을 체험해 보려 했던 당초 기대가 무너지게 된다”며 “학생들이 평소 현실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과거에는 대학생들의 활발한 활약에 정당들도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학생들이 정치와 사회 이슈에 무관심하다 보니 선거때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박유민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4년)

■ 만들어지는 '정치 무관심'

대학생들의 대선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초ㆍ중ㆍ고교 때부터 만들어 진 측면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방송통신대 김영인(교육과) 교수가 2002년 16대 대선 후 서울 시내 고교생 7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대선 기간 중 대선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없거나, 조금’이라고 답한 학생이 55.8%나 됐다.

입시교육에 잠식 당한 시민교육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은 무엇보다 현실과 동떨어져 이론만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정규 학교 교육 과정이 다루는 교과서에서 ‘정치참여’에 관한 언급은 초등학교 4년, 중학교 3년, 고교 1년 등 단 세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200여쪽에 달하는 중학교 사회 교과서(7종)들은 선거와 정당에 대해 단 2쪽만을 할애할 뿐이다.

그나마 고교에서 배우는 ‘정치’과목은 선택이어서 배우는 학생이 거의 없다. 성신여대 서현진(사회교육과) 교수는 ‘선거와 민주시민의 실태분석(2005)’이라는 논문에서 “오랫동안 학교는 정권 유지를 위해 무비판적으로 정치교육을 진행해 온 데다, 비현실적인 ‘개념’ 중심의 교과서 내용도 수 십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뽑기만 하고 하는 일 없는 학생회

청소년들이 참여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학생 자치 활동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점도 정치 무관심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와 학급의 대표를 뽑지만 학생회를 통한 자치활동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김영인 교수는 “학교 운영위원회 등 학교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학생 대표들이 배제돼 있다”며 “학생들에게 ‘투표해서 뭐하나’라는 불신과 무관심만 쌓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 경험을 위해 2003년과 2005년에‘청소년 의회’와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청소년 특별회의’를 만들었지만 학부모나 교사들은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교외활동이라며 학생들의 참여를 꺼려해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조 국(법학) 교수는 “학급, 학교에서 작은 정치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정치나 선거에 신경 쓰면 오염된다’며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선거 참여 막는 선거법

그나마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보려는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들의 모든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공직선거법 60조)의 벽 앞에서 좌절한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전누리(21)씨는 “투표권이 없다고 선거운동도 못하게 하면 정치적 자유를 빼앗는 것”이라며 “참여할 수 없으니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네트워크측은 이번 주중 ‘청소년 인권침해’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법과 선관위를 비판하는 UCC(이용자제작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릴 계획이다. 청소년인권운동단체 ‘아수나로’도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평가하는 UCC를 만들 계획이다.

박상준 기자 김혜경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4년)

■ '정치 선진국' 이렇게 가르친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 선진국들은 초ㆍ중등학교 때부터 선거 등 현실정치를 학교 교실로 끌어들이는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참여정치를 몸에 배게 하고 있다. 각 정당들은 ‘미래 당원’의 마음을 잡기 위해 누구보다 학생들의 정치참여 교육에 적극적이다.

스웨덴에서는 의회 선거를 앞두고 전국 고교에서 ‘모의선거’를 실시한다. 학생들이 그룹을 나눈 다음 직접 각 정당의 후보가 돼 정책을 공부하고 다른 학생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정책을 기준으로 실제 선거처럼 투표를 하는 학생들은 후보들의 정책을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책선거’를 경험한다. 스웨덴 출신인 에린(22ㆍ연세대 경영)씨는 “학교 때 모의선거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의 중학교 1학년생은 직접 정당을 구성하고 정책을 만들어 학급 대표를 뽑는다. 이 과정은 이들이 배우는 ‘중급1 공통과정’의 교과서 내용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정당을 만들고 전당대회를 여는 등 후보자 선출 절차를 거쳐 선거전에 돌입한다. 슬로건을 만들고 홍보용 영상이나 사진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은 당원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학급 대표를 뽑은 다음에는 실제 정당 중에서 자신의 당과 비슷한 강령과 정책을 가진 곳이 어디인지 살핀 뒤 궁금한 점을 묻고, 각 정당은 학생들에게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돕는다. 독일 정당들은 또 대학 캠퍼스에 안내소를 만들어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고 학교 학생회와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많은 사회단체들이 학교 시민교육에 직접 참여한다. 대표적인 비영리교육기관인 ‘시민교육센터(center of civic education)’가 만든 ‘초ㆍ중ㆍ고교생용 시민교육 프로그램’은 전 학교 수업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학생들도 현실 정치와 관련된 청문회, 모의선거, 역할극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개념과 참여의 필요성을 익힌다.

프랑스의 중학교 4학년 ‘시민교육’ 과목에는 대통령 선거 투표자, 기권자, 무효표, 유효표 등 각종 수치와 각 후보가 주장했던 핵심 정책을 정리해 학생들이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고 있다.

진실희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 4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