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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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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입력
2007.12.0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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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희ㆍ이경순 엮음 / 휴머니스트 발행ㆍ460쪽ㆍ2만8,000원

2004년 전북 장수군에서 열린 논개선발대회에서 1등 ‘충(忠)’으로 뽑힌 한 여성은 이런 당선소감을 남겼다.

“논개의 순국충절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몸소 실천하면서 아직도 논개를 기생으로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위해 기생으로 유인해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 산화했다는 거룩한 진상을 알리는 홍보사절의 역할에 충실하겠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일본군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빠져죽은 기생으로 알려진 논개.

그녀의 죽음은 당시 진주지역을 떠돌던 확인할 수 없는 소문에 불과했지만 종전 후 진주에 들른 유몽인이 <어우야담> 에 논개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열녀’의 신화가 만들어진다. 식민지 시기에 이르면 그녀는 잃어버린 조선의 상징으로 태어나는데 그것은 변영로의 시 ‘논개’와 김동인의 소설 ‘논개의 환생’ 등의 작품을 통해서다.

한국전쟁 후 논개신화는 한번 더 변용된다. 박종화의 소설(1954) ‘임진왜란’과 ‘논개와 개월향’(1962) 속의 논개는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몸을 바치는 여성, 남성에 도전하지 않는 희생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화(化)한다. 장수군 ‘미스논개’의 발언이 보여주듯 이런 해석에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경험일 수 밖에 없다.

한ㆍ중ㆍ일 3국 진로의 분수령이 된 임진왜란에 대한 각국의 기억은 전쟁에 대한 각각의 명칭 만큼이나 자의적이고 정치적이다. 가령 전쟁의 진상은 무능한 군주와 관료, 육군을 거느린 조선이 당대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한 일본에 대해 군사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에 가깝겠지만, 우리에게 임진왜란은 오직 열두 척의 배로 삼백여 척의 일본 함선을 깨뜨린 ‘성웅’ 이순신의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우리에게는 ‘만악의 근원’으로 꼽히는 도요토미 히데유시(豊臣秀吉)에 대한 일본의 기억은 어떨까? 사후 도요토미의 라이벌인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홀대받던 도요토미는 조선병합을 발판으로 아시아 진출을 노리던 19세기말부터 일본 내에서 현창(顯彰) 된다.

가령 청일전쟁 당시 요미우리신문은 ‘도요공 정한의 옛 전장’이라는 화보를 실었는데 이는 일본군 전투와 도요토미의 조선침략을 오버랩함으로써 대중들의 애국심을 부추키려는 의도였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면 일본교사들은 “대동아 건설의 창조에 매진하고 있는 이 때 해국(海國)의 진면목을 발휘한 히데요시를 예를 들어 가르치라”는 지침서를 읽어야했다.

수많은 인적, 물적인 희생자를 내고 해당 정권의 몰락이 재촉된 대규모 국제전이지만 3국 모두에게 이 전쟁은 ‘승전의 기억’ 만으로 조작됐다. 시대의 필요에 따라 전쟁영웅들의 신화는 재구성됐고 구성원들은 그 집단적 기억에 대한 예속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멈춰지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임진왜란이라는 중대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물음에 답한다.

무수한 전쟁을 겪었지만 역사를 정직하게 응시해 화해와 통합의 장을 마련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3국의 역사학자들이 강고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일국사(一國史) 연구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대답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지난해 6월 경남 통영에서 서강대 국제학한국학센터가 주최한 국제세미나 ‘임진왜란: 조일(朝日)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들을 수정ㆍ보완해 책으로 만들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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