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최모(43)씨는 요즘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A장애인협회라는 곳에서 불쑥 전화 해 “연말연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장애인이 만든 제품을 팔고 있다”고 호소하는 통에 4만원짜리 가루비누 세트를 샀다. 하지만 막상 집으로 배달된 것은 중국산 저가 제품이었다. 최씨가 A장애인협회에 항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이었다. 최씨는 “어려운 분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고 싶어 필요하지 않은 데도 구입했다”며 “서민의 온정을 이용해 사기를 치다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인 것처럼 가장해 물건을 팔고 잠적하는 가짜 장애인 단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불우이웃을 돕자” “장애인이 만든 제품”이라며 시민들의 온정에 호소한 뒤 장애인과 무관한 저질 물건을 팔고는 비싼 대금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경찰에 적발된 가짜 장애인 단체만 해도 7곳. 8월 대전에서 기부금 요구나 물품 강매로 2만5,000여명으로부터 14억7,000여만원을 챙긴 가짜 장애인단체가 덜미를 잡혔고, 4월에는 5만5,000명에게 70여억원을 가로 챈 가짜 장애인단체 6곳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찰 관계자는 “장애인 물품 구입 요청 전화가 오면 우선 정식으로 등록한 단체인지, 장애인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속는 시민도 억울하지만 더 큰 피해는 진짜 장애인 생산시설이 보고 있다.
실제 가짜 장애인단체들의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국 각 16개 광역자치단체별로 한 곳씩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의 매출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서울 목동의 장애인생산품 판매시설 윤태묵(63) 원장은 “대부분의 장애인 생산품이 한국공업규격(KS마크) 인증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지만 가짜 장애인 단체 때문에 판매에 애를 먹고 있다”며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정도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가짜 장애인 단체들은 특히 협박에 가까운 강매 사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장애인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우려가 높다. 부산 장애인생산품 판매시설 이수영(53) 원장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위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가짜 장애인단체들의 불법 행위를 막을 제재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도 장애인 생산품을 정부가 보증하는 ‘장애인 생산품 인증제도’도입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복지부 김수영(43) 장애인소득보장팀장은 “내년 초 시행을 목표로 세부 시행규칙을 마련하고 있다” 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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