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이 또 한번의 고비를 맞고 있다. 핵 폐기를 위한 설계도면인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목록’ 제출 문제 때문이다.
당초 북한은 지난 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대표단의 불능화 작업 참관 당시 의장국인 중국 측에 핵프로그램 신고목록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불발됐다. 북측이 제시한 신고목록을 바탕으로 이달 6~8일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북측은 회의 일정에 대한 답도 주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최근의 미묘한 교착 상황을 반영하는 정황들이다.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이번 평양행은 북한의 영변 원자로 가동중단 직후인 6월 1차 방북 때와 달리 교착 기미를 보이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게 정설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의 신고내용을 얻어 내기 위한 미측의 고육책이라는 얘기다.
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이 북측의 초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측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진 것도 신고 문제의 타결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방북에 협상가로서 힐 차관보의 정치 생명이 걸려 있다는 관측도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앞두고 힐 차관보의 입장이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핵 신고내용이 부실할 경우 행정부 내 강경파와 미 의회의 비판에 직면하게 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추진할 동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미측이 북측에 요구한 필수 신고내용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한 완전한 해명과 추출 플루토늄 총량 및 사용내역으로 알려졌다. 미측은 또 시리아 핵 이전설에 대한 의혹 해명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이에 대해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가 카운트 파트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필요하다면 군부도 만나고 싶다”고 제안한 것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는 핵 문제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북한 군부가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미온적 자세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못박기 위한 견인책인지, 아니면 북한 군부의 반발에 따른 것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힐 차관보의 방북으로도 상황이 타개되지 않을 경우 북핵 협상은 또다시 장기 교착이나 새로운 위기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힐 차관보의 방북 결과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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