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드 호세이니 지음ㆍ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발행ㆍ574쪽ㆍ1만3,500원
할레드 호세이니(42ㆍ사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란, 프랑스 등에서 체류했던 그의 가족은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조국이 공산국가로 변하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던 그는 2003년 신분과 종족이 다른 두 아프간 소년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연을 쫓는 아이> 를 발표, 작년까지 전세계 판매량 500만부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뒀다. 연을>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은 올해 발표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다. 5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 판권도 일찌감치 팔리는 등 호평을 얻고 있는 이 작품은 19년 터울의 두 아프간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마리암은 부유한 집안의 아버지가 혼외정사로 낳은 딸로, 그녀의 존재를 껄끄럽게 여기는 부계 가족들에게 떠밀려 나이 많은 홀아비와 혼인한다. 천>
소련군과의 전쟁에서 두 오빠를 잃은 라일라 가족은 소련군 철수 후 일어난 내전을 피해 이민하려던 중 폭격을 당한다. 부모를 잃고 중상을 입은 라일라를 거둔 사람은 그녀를 후처로 탐내는 마리암의 남편이다. 증오의 상대로 만나게 된 마리암과 라일라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과 종교 근본주의로 퇴행한 사회와 맞닥뜨리면서 점차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된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아프간전쟁 이후 재건을 모색하는 현재까지의 아프간 현대사 속에 두 여성의 개인사를 배치한다.
그가 소설을 전개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문장은 현란한 수식 없이 평이하고, 내용은 복잡한 플롯 없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됐다. 번역자도 지적했듯 초반부의 진행 속도가 필요 이상으로 더딘 약점도 발견된다. 하지만 6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이 책을 읽는 일은 전혀 고되지 않다.
작가는 유소년기의 기억과 꼼꼼한 취재를 통해 전쟁의 스펙터클이나 이슬람 극단주의적 행태로 각인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독자가 그 생생한 풍경을 응시하며 기억의 각질을 벗겨갈 때 드러난 속살에 스미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절절한 추체험이다. 장식없는 문장과 구성은 세계의 고통받는 자들과의 교감에 몰입할 수 있는 고요한 방이 돼준다.
호세이니는 한 인터뷰에서 “내 글쓰기가 아프가니스탄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일으켜 대중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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