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나라 사람 화씨는 봉황이 내려앉은 자리에서 진귀한 옥돌을 발견하고, 왕에게 바친다. 그러나 평범한 돌로 오인한 왕은 그의 왼발 뒤꿈치를 자른다. 억울한 화씨는 다음 왕에게 다시 올렸지만 이번에는 오른발이 잘린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초문왕에게 올렸고, 왕은 옥돌을 갈아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을 만든다.
<한비자> 에 나오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의 일화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이 옥으로 자신의 도장을 새기면서 '옥새(玉璽)' 라는 말이 나왔다.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이 옥새를 손에 넣기 위해 후대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몇 권의 소설로도 모자란다. 한비자>
▦지금도 그렇지만 도장은 소유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래 전부터 쓰였다.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인은 고유 형상을 새긴 돌로 문서에 날인을 했다. 서류나 봉물을 전달 과정에서 열어보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도 유용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도록 아들 환웅을 내려보면서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도장의 깊은 역사를 엿보게 한다. 중국에서는 신분에 따라 도장을 가리키는 명칭을 새(璽), 인(印), 장(章)으로 구분했고, 일반인의 것은 도장으로 불렀다고 한다.
▦요즘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감이란 본인의 도장임을 보증 받기 위해 관공서나 거래처에 등록해 놓은 인장을 말한다. 부동산 등기처럼 재산권을 등록할 경우나 주요한 사적 계약에서는 반드시 인감증명을 첨부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계약에 인감도장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감증명제도는 일제 시대에 시작됐고, 현재 이 제도를 사용하는 나라도 일본 한국 대만 뿐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요즘의 사인과 비슷하게 멋지게 흘려 쓴 '수결(手決)로 도장을 대신했다. 글을 모르는 평민들은 손가락 모양을 그리는 수촌(手寸)이라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제는 도장도 컴퓨터로 파는 시대다. 손가락 마디보다 적은 공간에서 장인의 오묘한 손놀림 끝에 탄생하는 도장을 보는 신비로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더 큰 문제는 위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위조된 인감을 이용한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위조한 도장으로 인감증명을 발급 받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도장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도장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분신과도 같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사용했다는 인감의 진위가 그의 도덕성을 판가름 짓게 된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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