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싸다.'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이 엊그제 이화여대 초청 강연에서 인용한 외교가의 격언이다. 일부 언론에는 '~ 전투기보다 싸다'고 잘못 보도됐다.
송 장관은 외교부의 1년 예산이 국방부가 1년에 전투기 10대 사는 값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분단 탓에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걸맞은 기여도 못하고 존경도 덜 받는다면서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북한 문제만 나오면 굉장히 작아진다"고 한 언급이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때 정부의 기권을 연상시키면서 그의 '외교철학'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그 철학을 다시 일깨웠다. 게이츠 장관은 최근 캔사스 주립대 초청 강연에서 외교, 가치의 공유, 개발지원과 같은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예산이 이라크 아프간 전비를 빼고도 5,000억 달러인데, 국무부 예산은 360억 달러에 불과하며 국무부 외교관수가 항공모함 전단 하나를 채울 인원이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 국방장관과 한국 외교장관의 어법이 서로 입을 맞춘 듯 흡사하다.
▦ 송 장관은 지난 달 초 방미 중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주최 포럼 연설에서 한국을 동북아 안보체제의 볼 베어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웃 나라에 위협이 된 적이 없는 한국은 동북아의 지역 안정과 협력을 촉진하고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균형자론의 송 장관식 버전인 셈이다.
물론 송 장관은 한국의 그런 역할에 한미동맹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참석차 방한 중이던 게이츠 장관은 보수언론의 견해와는 달리 전작권 전환 등의 현안이 발전적으로 해결돼 한미동맹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 한 나라의 외교가 꽃을 피우려면 해당 장관들의 역량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최고 지도자의 외교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그 지도자를 뽑는 선거운동이 한창인데 외교안보 비전 등 중요 정책 논쟁은 보이지 않는다.
평화개혁세력의 정통을 잇는다는 후보의 외교 비전은 추상적이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는 보수 후보들은 상상력 부족 탓인 듯 과거에 갇혀 있다. 동북아와 세계 정세는 급변하는데 우리 대선에서는 시커먼 연탄재만 날리고 있다. 이래서야 어디에 선들 자꾸만 작아지지 않을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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