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의 신화'가 무너질까. 검찰 특별수사ㆍ감찰본부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전격 출국금지 조치함에 따라 이 회장 처리 방향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지금까지 몇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대부분 총수 사법처리는 피했다.
이 회장이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 12명의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무더기로 기소된 것이 유일한 사법처리 사례다.
1961년 5ㆍ16쿠데타 세력이 이 회장의 아버지인 고 이병철 당시 삼성 회장 등 기업가 11명을 부정축재자로 규정했지만 그는 재산 헌납 약속과 함께 사법처리를 면했다. 5년 뒤에는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져 이창희 한국비료 상무 등이 구속됐지만 이병철 회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제외하면 사법처리된 적이 없다. 아예 검찰에 출석조차 하지 않기도 했고 출국금지된 적도 없다.
2003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매각 사건의 경우 피고발인 33명 중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들인 허태학ㆍ박노빈씨가 기소되고 이학수 부회장, 이재용 전무 등 32명이 조사를 받았으나 이 회장은 아직 조사를 받지 않았다.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는 이학수 부회장이 기소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고 이 회장은 역시 소환되지 않았다. 2005년 'X파일' 사건 때도 이 회장은 서면조사만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회장의 출국금지가 주목받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강공책이라는 점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이번에는 이 회장도 소환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수본부는 소위 '떡값 검사' 의혹에 쏠리는 이목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삼성 관련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특검팀은 아예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별도로 설립된 특수조직이다.
그러나 상대가 '관리의 삼성'임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사법처리는 장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아직까지는 물증도 변변치 않다. 소위 '회장님 지시사항' 메모가 있긴 하지만 이 회장 사법처리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설사 비자금 조성 등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이 회장이 "나는 몰랐다"고 하면 사법처리는 요원해진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면 이번에도 삼성 고위 관계자들이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 회장 기소 여부는 수사팀이 이 회장 개입 사실을 입증하는 명백한 물증을 찾아낼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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