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작시편 <만인보> 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 여기에는 사람의 추악까지도 해당되어야 했다. … 우선 내 어린 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 만인보>
그것은 다음 단계인 편력시대의 여러 지역과 사회 각계 그리고 이 땅의 광막한 역사와 산야에 잠겨 있는 세상의 삶을 사람 하나하나를 통해 현재화할 터이다.”(<만인보 1> 작자의 말) 만인보>
1986년 고은(74ㆍ사진) 시인이 303편의 시를 나눠 담은 <만인보> 1~3권을 출간하며 적은 출사표다. “민족을 개체의 생명성으로부터 귀납하겠다”는 민중사관적 포부 아래 기획된, 한국문학사상 최대 규모의 연작시집 <만인보> (창비 발행) 시리즈가 내년에 마무리된다. 만인보> 만인보>
고씨는 최근 시 395편이 실린 24~26권을 출간했고, 등단 50주년을 맞는 내년 상반기 중 27~30권을 낼 계획이다. 마지막 네 권은 이미 초고 쓰기를 마친 상태다. 각 권마다 100~150편의 시가 실리고 있는 만큼, 완간된 30권의 총 수록작은 3,000편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이번 시집에서 고씨가 주로 다룬 인물은 승려들이다. 원광, 혜월 등의 역사적 고승부터 절에서 우연히 만난 무명승까지, 시인은 시대와 위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승려들을 호출해 그들의 삶과 행적을 소묘했다. 크로키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이다. 시적 표현과 기교가 없는, 마치 단문을 행갈이한 듯한 시구들이 생애마다의 핵심을 간파한다.
고씨는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을 분명히 하면서 궁극적으로 민중적 역사관을 담은 서사시를 지향한다. 일테면 그는 신라의 국사 원광에 대해 ‘불교의 불살생 5계 10계도/ 신라의 살생 5계로 바꿨다/ 임금에게 충성/ 나라에 충성/ 세속5계로 바꿔버렸다’(‘원광’)면서 그가 승려로서 본분을 잊고 집단 살생행위인 전쟁을 부추겼다고 질타한다. 이회광, 곽법경을 비롯한 일제시대 친일승들도 ‘그 두 사람의 수작’ 등의 작품에서 매섭게 비판 당한다.
반면 세속적 사랑에 빠진 승려들에 대한 해학적이면서도 따뜻한 묘사(‘상사병’ ‘남색 사자’ 등)는 노시인의 인생에 대한 넉넉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19세 때부터 10년간 이어졌던 시인의 승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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