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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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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스토리

입력
2007.12.0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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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로 티눈 도려내듯, 예리한 눈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이 많아졌다. 이들은 ‘재미 있다’ 또는 ‘감동적이다’라는 원시적 감상을 혐오한다.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연출의 밀도, 캐릭터를 구현하는 배우의 내공을 잘근잘근 ‘씹는다’. 이른바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영화일수록,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29일 개봉한 <은하해방전선> (감독 윤성호)은 이런 관객을 당황케 만들기에 딱 좋다. 완성도를 따지려니 너무하다 싶을 만큼 구멍이 적나라하고, 연출력에 시비를 걸자니 감독이 먼저 스크린 속에 드러누워 버린다(영화 속 초짜 감독 ‘영재’는 윤 감독의 페르소나다). 반쯤 마무리된 편집본을 보여주는 듯, 영화는 허허실실 낯선 리듬으로 관객의 혼을 빼 놓는다. 어처구니없게도, 그게 꽤나 매력적이다.

SF영화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영화는 사랑과 일(영화)이 모두 꽉 막혀 괴로운 초보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은하’는 그를 떠난, 혹 그가 떠나게 만든 여자친구의 이름.

내세울 거라곤 ‘말발’밖에 없는 영재(임지규)가 장편영화 ‘입봉’(데뷔)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실어증에 걸린 남자가 쌍둥이 자매와 번갈아 사랑에 빠진다는 시나리오 얼개만 있을 뿐, 영화는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 일관된 답답함이, 접착력이 현저히 약한 이 영화의 흐름을 이어 붙인다.

설상가상, 1분에 10문장 이상 쏟아내는 입담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던 영재에게 실어증이 찾아온다. 그리고 영화는 복화술과 피리소리로 대체된 수다로, 영재 또는 윤성호 감독 세대의 억눌린 목소리를 쏟아낸다. 그 목소리와 어투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그것. 지향만 있고 의지는 없는 정치의식, 피상적인 사랑, 파편화한 자의식이 소리를 잃고도 끊임없이 웅성댄다.

자괴감과 세상의 벽이 영재를 탈진하게 만들 때쯤 영화는 청각장애인 은성(이은성)을 슬그머니 등장시킨다. 소리와 소리로 연결되는 ‘소통 불가’의 언어 안에서 허우적대다가, 급기야 그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으로 ‘해방’을 시도한다. 하지만 시종 냉소적이고 쾌활하던 영화의 흐름이, 이 부분에서 김이 새는 느낌이 없지 않다. 어쩌면 처음부터 구축 불가능하던 ‘전선’을, 영화 속 조악한 소품의 하나처럼 급조한데서 온 한계일 수도 있다.

영화의 미덕은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 겨우 1억원의 예산과 단출한 구성으로,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매끄러운 코미디의 옷을 입혔다. 특히 악기 소리를 이용해 실어증에 걸린 영재가 의사소통을 하는 부분에서 언어에 대한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압권은 영재가 완성된 영화를 들고 부산영화제에서 무대인사를 하는 장면.

‘소통’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마지막까지 영화를 ‘갖고 노는’ 감독의 재기에 웃음을 참기 힘들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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