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러시아 총선이 실시됐다. 관심거리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다. 국제 언론이 추리하는 유력한 시나리오는 헌법의 3선 금지에 묶인 푸틴이 내년 5월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직에서 미리 물러나 의회로 들어간 뒤 '실세 총리'로 국정을 맡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 집권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나선 사실에 비춰 그럴 듯하다.
대통령 자리를 잠시 꼭두각시 대행에 맡겼다가 3월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모두 허점이 많아 실제 어떤 선택을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푸틴이 총리가 되려면 새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그를 지명해야 한다. 푸틴은 최근 측근인 슈브코프를 총리에 임명했고, 그가 푸틴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헌법 상 권한이 제한되고 임기도 보장되지 않는 총리로 내려간 푸틴이 아무리 실세라도 지난 8년과 같이 국정을 마음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데 있다. 특히 권력의 속성에 비춰 누구든 새 대통령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어, 언제까지 실세 총리를 용인할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다양한 후속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그러나 슈브코프가 대통령 대행 노릇만 하고 푸틴이 재출마하는 것은 헌법의 재연임 금지를 넘어서기 어려워 정통성 논란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 다음 시나리오는 슈브코프가 건강을 이유로 대통령직에서 조기 퇴진, 푸틴 총리가 대행을 맡았다가 대선에 나서는 것이다. 첫 번째보다는 낫지만 역시 무리수다.
그래서 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축소, 총리에게 실권을 넘기는 방안이 나온다. 의회 권한을 강화, 푸틴이 집권당 총재로 국정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도 설득력이 있다. 현재 의회 절반을 차지한 집권당의 압승을 위해 올인하는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어찌 되든 푸틴이 권력을 지킬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총선은 집권 연장을 위한 세(勢) 과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언론은 선거과정이 관권 개입으로 얼룩진 점을 들어 푸틴과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라고 욕한다.
그러나 독립적 여론조사에서도 푸틴 지지율이 85%에 이르는 사실은 이런 시비를 무색하게 한다. 러시아 국민의 민주정치 의식수준을 비웃을 수 있지만, 국민이 진정 원하는 인물을 지도자로 추대하고 따르는 것을 나무라는 것은 애초 쓸모없는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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