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실사구시'/ 실용·현장 중시… 여의도식 정치 '바꿔'
서울시장 때부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보좌해 온 핵심 측근은 "이 후보 인생은 실용주의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이 후보 측은 이 후보의 정치철학을 '창조적 중도실용주의'로 압축해 표현한다. 이 후보가 추구하는 정치는 '실용정치'이고, 그가 당선된다면 '작고 효율적인 실용정부'를 이끌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단어도 자주 인용된다. 이는 모두 추상적 관념론이나 이념을 배격하고 실질과 합리, 유효성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최고권력자가 아닌 국가 최고경영자(CEO)'를 선거구호로 내세우는 것은 이런 면에서 당연하다. 또 존경하는 인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꼽으며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 후보가 경제 살리기를 국정비전의 최우선 순위로 꼽고, '일하는 대통령'을 추구하는 것은 대기업 CEO로 잔뼈가 굵은 그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한 측근은 "이 후보는 1970, 80년대 성장시대엔 기업 현장에서 실사구시를 구현했고, 이제는 정치 현장에서 이를 구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여의도식 정치의 탈피를 외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는 늘 "정치도 변해야 한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돼선 안 되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경직된 이념의 정치나 낡은 투쟁을 일삼는 구태 정치를 극복하고 생산적인 정치로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한나라당 후보 당선 후 당 운영 시스템에 기업식 제도를 일부 반영한 것도 이런 시도의 하나다.
인생관도 이런 범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후보는 철저한 현장주의자이고 실천주의자이다. 대기업에서 성과를 이뤄 내며 살아 온 인생 역정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 후보는 또 도전 정신과 긍정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좌우명이 '최선을 다하자'다. 유년 시절 극도의 가난을 경험하고 성공신화를 일궈낸 이 후보에겐 도전하는 자세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CEO로서의 경험이 과연 현실 정치에서도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실용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국정운영 철학이 빈곤하다는 지적도 있다.
■ 이회창 '법과 원칙'/ '대쪽' 이미지… '따뜻한 보수' 내세워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소신과 원칙을 앞세운다. '대쪽' 이미지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완고함, 오만함으로 비쳐 오히려 손해를 봤을 정도다. 대법관 시절 그는 40차례의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여, 이중 13번의 소수의견을 냈다.
1988년 중앙선관위원장 시절 현직 대통령(노태우)과 야당총재(김영삼)에게 경고서한을 보내고, 93년 감사원장 시절 그를 임명한 대통령마저 불편하게 할 정도로 국방비리를 강도 높게 파헤친 일화는 유명하다. 또 국가안보에 관한 문제에서 총리가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127일만에 총리직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2002년 대선 때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근 정계은퇴 및 경선 불출마 선언마저 뒤집어 스스로 말한 원칙을 져버렸다는 점이 멍에가 되고 있다.
이 후보는 자유주의자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어떤 철학적 명제보다 우선시한다. 동시에 그는 국가가 자유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갖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정치철학이 바로 법치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법의 지배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바탕 위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도 바로 법치가 아닌 제왕적 대통령 1인 체제로 운영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슬로건으로 내건 '반듯한 대한민국'도 법과 원칙이 통용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는 법치와 함께 공동체를 위한 '노블리스 오블리쥬'도 강조한다. 지난달 출마선언 때에는 "따뜻한 시장경제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미래를 여는 창_이회창의 정치철학과 비전'이란 자신의 책에서 "이회창은 '개혁적 보수'라 할 수 있다"고 분류했다.
대북관에 있어서는 강경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원칙주의자 스타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그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상호주의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햇볕정책 10년 만에 돌아온 것은 핵무기 개발이란 재앙"이라면서 "북한이 개혁ㆍ개방에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지원은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 정동영 '중도 통합'/ 좌와우 융합… 빠른 결단 장점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7대 대선에서 현실적으로 보수 진영에 둘러 쌓인 민주화세력의 대표주자이다. 진보 진영에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나 민노당 권영길 후보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문 후보는 과거 '민주화운동'과는 거리가 있고, 권 후보는 '민주화 세력'으로 분류되기 보다는 좌파의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후보는 대학 시절 유신이 선포된 뒤 1972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한 뒤 투옥과 수배를 거치며 어두운 시대상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후 18년간 기자의 길을 걸으며 그는 민주화운동의 '투사'가 아닌 '기록자'가 되었고, 정치에 입문해서도 거의 '온건 진보 노선'쪽에 섰다.
이런 상황탓에 그를 '민주화세력'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 후보는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에서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정 후보의 정치철학은 '중도개혁주의'로 요약된다.
정당 개혁에 상당한 방점이 찍혀있다. DJ 정부 시절 권력 핵심실세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2선 후퇴을 요구하며 벌인 정풍운동은 '여권 내 개혁쿠데타'나 다름없었다. 열린우리당 창당 역시 구 체제를 타파하려는 같은 시도였다.
정 후보의 오랜 친구인 권만학 경희대 교수는 "잘못되고 부패한 현실속에서 정의를 세운다는 정치신념이 확고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수성가형 정치인에서 엿볼 수 있는 돌파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결단은 빠르나 정치적 신뢰도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정책공약에서도 시혜적 복지가 아닌 일종의 생산적 복지를 강조한다. '민주화의 절대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노력 안하고 일 안하는 사람이 득보는 세상은 철저하게 반대한다'는 그의 철학을 주변에선 '근로주의'라고 부른다.
그의 이 같은 생각은 고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사실상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그의 고달팠던 경험의 산물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마이너리티"출신이라고 말한다.
이번 대선에 임하는 그의 최종적 정치철학은 '통합의 정치'다. 민주화정권 10년을 넘어서 좌와 우를 융합하는 역할을 차기정권의 시대적 소임으로 정해놓고 있다. 이는 좌우명인 구동존이(求同存異ㆍ다름이 있지만 공존하는 사회 추구)와도 일치한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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