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에서 개혁이나 이념적 색채가 약해지면서 실용적 노선이 급부상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세금이나 이민자 문제 등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거나 좌우이념에 치우친 정치인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24일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온라인판은 1980년대 과감한 개혁으로 인기를 얻었던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식의 통치 스타일이 막을 내리고 세금인하, 이민자 문제, 동성 결혼 등 생활에 가까운 문제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치인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혁과 이념을 앞세운 정치인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최근 3선 연임에 성공한 덴마크의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54) 총리는 이런 흐름을 십분 활용하는 정치인이다.
2001년 총선 당시 40대의 젊은 나이로 야당인 자유당 당수로 출마한 그는 이민자 규제를 통한 실업률 낮추기,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의 생산성 증대 등 유권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이슈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면 70여년의 장기 집권을 자랑하던 집권 사회민주당은 구태의연하게 노조 지원, 노동자 연대 강화 등 좌파 정책을 이슈로 내걸었다. 라스무센 총리의 당선과 3선 연임은 유권자들이 더 이상 이념이나 성향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을 눈치 채고 변신을 서두르는 기성 정치인들도 있다.
기독교민주당(CDU)을 이끄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53) 총리는 2005년 총선 당시 집권 사회민주당(SPD)을 20% 이상 앞섰다가 막판에 9%까지 추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유세 과정에서 공약의 하나였던 대규모 공공 부문 민영화, 단일 세제 도입 등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그녀에게 ‘독일의 마가렛 대처’라는 급진 이미지가 씌워졌던 것이다.
특히 수입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똑 같은 액수의 세금을 내는 단일 세제안이 도입되면 독일 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집권 후에는 점진적 개혁과 실업률 낮추기 등으로 관심의 방향을 돌리고있는 상황이다.
내년 3월 총선을 앞둔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자파테로(47) 총리는 최근 들어 동성 결혼 합법화, 이혼 절차 간소화 등을 주제로 기자 회견과 TV 토론회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모습은 2004년 총선 당시의 행보와 대조적이다.
그는 당시 스페인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터지면서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스페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자 스페인군 철군 등 정치 이슈를 내세워 당선됐다.
런던정치사상연구소의 클레 폭스 소장은 “유럽의 유권자들은 영국의 대처 총리가 과감한 개혁으로 성공했지만 정치,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앞으로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표를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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