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27일 무거운 침묵과 팽팽한 긴장감이 교차했다. 전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그룹 최고위층이 출국 금지 조치된데 이어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으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삼성 관련 계좌 추적에 착수하면서 비자금 등이 숨겨진 장소로 지목된 서울 태평로 본사 27층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재로서는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그룹이 최악의 위기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 반영하듯 삼성 임직원들은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닫았다.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룹 고위관계자는 "'경영환경이 어려운데 특검을 한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다'는 며칠 전 입장표명으로 대신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었던 대통령의 특검 거부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허탈감도 엿보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제 수사를 받는 것 외에 아무런 대책이 없지만, 검찰수사와 특검을 이중으로 받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삼성 임직원들은 이 회장도 출금 조치 대상에 오르면서 검찰조사까지 받게 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한 관계자는 "만일 이 회장이 검찰이나 특검의 조사를 받게 된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대외활동은 물론이고, 그룹의 명예와 글로벌 신인도에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삼성 안팎에서는 검찰조사 및 특검이 비자금과 검찰에 대한 로비를 넘어 경영권 불법 승계의혹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다, 최근의 악화한 여론을 볼 때 수사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삼성은 당분간 내년 경영공백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달 말까지 확정해야 할 새해 경영계획 등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경영의 3대 축으로 불리는 이 회장과 그룹 전략기획실, 계열사 사장단이 상당수 수사선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마당에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수사와 특검이 몇 개월씩 지속되면 실제로 그룹 경영에 어떤 차질이 빚어질지 암담할 따름"이라고 우려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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