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데뷔작인 1998년 영화 <여고괴담> 에서 분한 그녀의 이름이다. 신이(29)의 등장은 출발부터 그랬다. 좀 비정상적이고 비뚤어지고, 화면의 앞쪽에 내놓기엔 어쩐지 부적절해 보이는 캐릭터가 그녀의 몫이었다. 신이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2004년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뽀글뽀글 ‘장정구 파마’ 머리를 한 채 라면 면발을 휘두르며 “벗으라면 벗겠어요~” 식의 코믹 사투리 대사를 날릴 때에도 그녀는 앵글의 변두리를 장식하는 독특한 조연에 그쳐있었다. 발리에서> 여고괴담>
하지만 이렇게 다져진 신이의 ‘조연 내공’은 이제 가볍지 않은 수준에 달했다. <색즉시공> , <낭만자객> , <가문의 위기> , <구세주> 등을 거치면서 영화의 간을 맞추는 법을 터득한 그녀는 OCN의 <직장 연애사> 에서 드라마 첫 주연을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마쳤다. 직장> 구세주> 가문의> 낭만자객> 색즉시공>
여세를 몰아 내달 개봉하는 <색즉시공2> 에서도 짭짤한 ‘신이 표’ 코믹연기로 한바탕 놀아볼 태세이다. 어느새 연기생활 10년을 바라보는 그녀에겐 고민이 하나 있다. “혹시, 코믹 연기자로 굳어지지 않을까”이다. 그래서 <직장 연애사> 에선 일부러 힘을 빼기도 했다. <색즉시공2> 의 개봉 행사를 앞두고 잠시 숨을 돌리는 그녀를 청담동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색즉시공2> 직장> 색즉시공2>
“평소에는 원래 조용조용하고, 성격이랑 연기랑 다른 것이니까요.”
콧소리가 들어간 대구 사투리를 예상했더니 똑 부러지는 서울말이다. 코믹한 대화를 바랐는데 웃기기는커녕 진지하다. 캐릭터와 너무 다르다고 하니 그냥 웃는다. “<색즉시공> 을 찍을 때부터였어요. 주요 배역을 맡은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는데, 맡은 캐릭터가 다른 인물들과 동일화 되면 안되고 또 재미를 줘야 하는 것이어서 코믹 연기에 집중하다 보니 계속 굳어진 것 같아요” 색즉시공>
직장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담을 그린 드라마 <직장 연애사> 에서 신이는 그래서 웃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코믹극이 아닌 정극에서 자리를 잡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밀고 당기는 청춘남녀의 러브액션과 그녀의 만남은 대사가 아무리 진지해도 신이의 잔상을 가진 시청자들에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맞아요. 되도록 웃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정색을 하고 예전과 달라지려 한 것은 아니죠. 만약 그랬다면 시청자들이 다들 ‘제 왜 저래’ 하지 않았겠어요. 이미지 변화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죠.” 직장>
배우라면 아름다운 멜로물의 주인공을 맡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 아닐까라는 식의 쉬운 접근은 신이에게 통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아니라 세밀한 현실을 연기로 보여주는 멜로의 주인공을 꿈꾼다고 할까요. 비련의 멜로 주인공은 원치 않습니다. <구세주> 에서 보였던 휴먼 코미디, 휴먼 로맨틱을 계속하고 싶어요.” 구세주>
사투리와 재치 있는 대사처리는 신이에게 인형 같은 외모의 배우들 못지않게 인기를 가져다 준 공로가 있지 않을까. 이 질문도 기자의 오산이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 에서 사실 시청자들의 생각과 달리 특별히 애드립을 한 적은 없었어요. 드라마로는 첫 작품이어서 감히 대사를 바꾼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죠. 아주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어미를 살짝 바꾸는 정도로 변화를 줬을 뿐이었죠. 사실 사람들이 제 연기를 신기하다고 봐 주신 이유가 언뜻 이해되진 않았죠.” 발리에서>
결혼 적령기에 놓인 배우를 만나면서 ‘결혼 계획’을 묻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물었다. “서른넷에 결혼할 계획입니다. 별 이유는 없고 딱 좋은 나이인 것 같아요. 한 살만 더 먹어도 나이 든 것 같고 한 살이라도 적으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요.”
신이의 프로필에 적힌 특기는 판소리이다. 무작정 연극을 하겠다며 상경해 들어간 국립극장에서 연수단원으로 있으며 창극을 배운 덕이다. 이후 연극무대에 섰다가 꾸준한 영화 오디션을 거쳐 스크린에 올랐다. 원래부터 ‘심각한’캐릭터였던 그녀를 기억하는 예전 지인들은 지금의 ‘웃기는’신이가 영 어색하다.
노출연기에서 스스로 말하길 ‘괴물’같은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맛을 본 그녀는 “적은 나이도 아니라서 빨리 연기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는 기분도 드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연기가 공부하듯이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어떤 캐릭터가 저의 끼를 터트릴지 모르겠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한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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