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이 없는데 닭이 나옵니까? 품어줄 닭이 없는데 달걀이 부화됩니까?”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ㆍ스파)의 ‘나홀로’ 컬렉션 마지막날인 22일 서울 남산 국립중앙극장 특설무대 앞에서 만난 컬렉션기획자 이재현씨는 “이런 식으로 닭이냐 달걀이냐를 놓고 다투다가는 한국 패션 다 망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내 최고의 연혁에, 대중적 인지도면에서도 최고를 자랑하는 디자이너그룹의 컬렉션이었지만 3일간 열린 행사는 그 어느때보다 언론이나 패션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막을 내렸다.
컬렉션 주도권을 놓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은 끝에 내실이야 어떠했든 4년간 통합했던 서울컬렉션에 불참하고 단독으로 연 행사였다. 그러나 시 지원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대폭 축소된 규모, 뒤늦게 단독 컬렉션을 여느라 해외 컬렉션 시즌과 너무 벌어진 일정 등이 발목을 잡았다. 개막일인 20일에는 느닷없이 한파까지 몰아쳐 객석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행사때마다 쇼장 입구에 수백명씩 줄을 섰던 스파 컬렉션의 쇠락을 보는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물론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이며 VIP초청 티켓을 쥔 고객들이 행사장에 줄었다고 해서 컬렉션의 질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진태옥 루비나 박윤수 장광효 등 쟁쟁한 디자이너들의 쇼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조율된 옷과 무대로 하이패션의 진수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뉴욕컬렉션에서나 볼 법한 높이 7m에 최대인원 700명을 수용하는 특설 텐트도 나름대로 볼거리였다.
그러나 무대 뒤편에서는 온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모델들이 오들오들 떨고(봄여름 옷을 입어야 하니 얼마나 춥겠는가), 프레스룸은 등을 맞대고 앉아야 할 만큼 좁은데다 그나마 자리도 몇 석 안됐다. 옹색한 기분이 들었던지 한 원로 디자이너는 “아무리 서울컬렉션에 불참했다고는 해도 서울시에서 얼마간은 지원을 해줄 걸로 기대했는데… 그럼 좀 나았을 걸”이라며 말을 흐렸다. 국내의 왜곡된 패션유통 탓에 제품의 주문과 발주 즉 비즈니스가 없는 컬렉션이 예사라고는 해도, 해외 바이어나 프레스는 찾아볼래야 보기 어려웠던 것도 안타까움을 떠나 컬렉션의 존재이유를 되묻게 했다.
한 달 전에 열린 서울컬렉션도 문제는 많았다. 외형이야 서울무역센터에서 성대하게 펼쳐졌지만 스파의 불참으로 “앙꼬는 다 빠졌다” 소리가 나왔다. 패션쇼 시간이 수시로 지연되는 등 엉성한 진행을 꼬집으면 행사를 주도해야 할 서울패션센터는 기획연출사의 미숙함만을 탓하며 수수방관했다.
결국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컬렉션은 한쪽은 내용이 빈약하고, 다른 한쪽은 외형이 빈곤한 채 제각각 굴러간 꼴이 됐다. 이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한국패션이다.
한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가 국내시장을 다 잠식하는 마당에 국가를 대표하는 컬렉션 하나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다니 착잡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을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만들겠다는 서울시나 국내 최고 디자이너 그룹을 자처하는 스파가 조화로운 지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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