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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선거는 '진실'을 뽑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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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선거는 '진실'을 뽑는 게 아니다

입력
2007.12.0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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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를 연구한 학자 가운데는 선거 캠페인의 효과를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론조사 추이와 실제 선거결과를 살펴보면, 현직 대통령의 인기와 정당 지지도 및 경제 상황 등에 근거한 초기 예측이 대개 적중한다는 것이다. 앤드류 겔먼 등의 1993년 연구가 대표적이다.

물론 반박도 많다. 여론조사 예측의 오차가 크고 다수 후보가 다투는 후보경선이나 1992년 대선과 같은 3파전에는 거의 쓸모 없는 점에 비춰, 여론조사 추이를 근거로 캠페인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11월 투표까지 1년 남짓한 선거과정에 8월 여론조사 예측이 가장 정확한 사실은 캠페인이 유권자 관심을 일깨우고 선택 기준을 제시하는 효과를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 미망에 사로잡힌 정치와 언론

엇갈리는 얘기를 앞세운 것은 우리 정치권과 언론이 모두 일방적 캠페인, 특히 네거티브 캠페인과 보도 효과를 과신하는 듯해서다. 미 정치학회장을 지낸 샤트슈나이더가 일찍이 "선거 캠페인은 선거가 무엇을 위한 다툼인지 결정한다"고 말한 것에 그대로 동의한다면, 정치권과 언론의 인식은 수긍할 만 하다.

언론을 정치권과 묶은 것은 흔히 이념성향 등에 관계없이 네거티브 캠페인에 스스로 앞장서거나 진흙탕 '진실 논란'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선거와 캠페인의 본질적 기능을 오해, 헛된 미망에 얽매인 것이기 쉽다. 우리 정치와 언론은 민주선거의 최대 과제가 진실하고 도덕적인 인물을 뽑는 것이라고 웅변하기 일쑤다. 이걸 감히 미망으로 보는 것은 민주정치 원리와 실제, 어느 쪽과도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선거의 본질적 과제는 민주적 절차로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뽑는 것이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기에, 헌법적 합의로 마련한 방안이 선거의 공정성 보장이다. 진실 규명이든 도덕성 검증이든,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다. 우리 언론은 선의든 악의든 이를 저버리고 있다.

샤트슈나이더 등이 선거 과정과 캠페인이 민주선거의 정당성에 이바지한다고 규정한 데는 전제가 있다. 정치와 언론이 '집단 담합'의 틀을 넘어, 선거 주체인 유권자의 욕구를 먼저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유권자는 정치와 언론의 선거 담론과 아젠다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스펀지'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선거 담론이 유권자 욕구를 정확히 반영해야만, 승리한 후보가 진정한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공약을 실천할 수 있다.

누굴 편든다고 하겠지만, 지난 대선의 교훈부터 새겨야 한다. 조작된 진실 논란이 승패를 갈랐다는 진부한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와 언론이 유권자 욕구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탓에, 보수쪽은 맹목적 보수논리에 매달려 실패했다. 또 진보 쪽은 상징조작으로 반사 이익을 과도하게 누린 결과, 집권 후 국민 욕구와 지지의 실체를 옳게 보지 못하고 이내 파탄으로 내달렸다.

● 유권자 욕구 올바로 읽어야

문제는 지금 상황도 그릇된 데 있다. 정치와 언론은 도덕성 검증을 명분으로 일탈까지 무릅쓰지만, 후보의 국가경영 능력이 우선적 요건이라는 유권자가 훨씬 많다.

이걸 외면한 채 공영방송까지 범죄인 모정(母情)의 일방적 주장을 몇 십분이나 방영한 것은 후보 검증이 민주선거의 기본을 짓밟는 한심한 현실을 상징한다.

품격과 도덕성을 지닌 대통령을 뽑자는 데 무슨 딴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선거의 본질에 무지한 주장일 뿐이다. 그 것으로 대세 역전을 꾀하는 것도 어리석다. 유권자는 '미래를 위한 최선의 투자'를 목표로 대통령을 뽑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와 언론도 미래를 논해야 한다. 그게 진짜 검증이고, 사회 전체가 실패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선거는 진실을 뽑는 게 아니다.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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