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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8> 싸이 트웜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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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8> 싸이 트웜블리

입력
2007.12.0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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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예술계의 전설적 인물인 싸이 트웜블리(1928년생)는 외설로 이름 높다. 그는 인간의 육욕 행위에 관해 난잡스럽고, 자신의 색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무람이 없었다.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음탕하고 성적으로 방탕한 예를 꼽자면, 그의 이름은 결코 빠지지 않을 테다.

작가 활동의 제1기라고 칭할 수 있는 1958년부터 63년 사이에 제작된 그림들은 특히 호랑방탕하다. 추상화라지만, 특정한 성행위의 흔적임이 강조되고, 또 그러한 행위 혹은 욕정의 등가물로 제작ㆍ제시됐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포르노보다도 더 노골적이고 낯 뜨겁다. (난 전시장에 걸린 그의 그림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리는 관객을 본 적도 있다; 물론 그는 나를 따라한 것이었겠지만.)

트웜블리의 하드코어적 회화는, 동료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의 야릇한 우정(?), 유럽과 북아프리카로의 충동적 여행, 갑작스런 결혼에 이은 로마로의 이주 등 삶의 드라마틱한 전개와 함께 발전ㆍ전개됐다. 제리 살츠 같은 평론가는 ‘트웜블리의 삶에서 중요한 작업의 등장엔 늘 라우센버그가 연루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제1기의 그림에선 성적 엑스타시를 향하는 무수한 스트로크들이 화면을 지배한다. 욕정이 아낌없이 분출되고, 종종 선과 선이 뭉쳐 분명한 국부의 형태를 취하며, 쾌감의 대폭발을 기록하고 기념한다. 화폭에 결과로 남은 난폭하고 추잡한 선들과 더러운 얼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는 이에게 비밀스런 후끈함을 전달한다. 피와 체액으로 난장판이 된 치정 살인 사건의 현장과도 유사한 느낌이다.

흥미롭게도 작가의 커리어는 광폭한 사랑의 전개과정을 그대로 따른 것처럼 뵌다. 63년, 어떤 이유에서 육욕적 사랑의 에너지는 고갈됐고,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흑판에 지지거리는 낙서-종종 히스테리컬한 에너지의 분출을 보여주는-를 남겨놓은 것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더니 70년대 중반부터는 아주 냉담하고 절제된 화풍으로 변해버렸다.

누군가는 작업의 제2기라고 볼 수 있는 70년대 초반까지를 “포스트-오르가즈믹 칠(오르가즘 이후의 오한)”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렇다면, 제3기라고 볼 수 있는 70년대 중반 이후의 작업은 “성적 무관심의 냉각기”쯤 되는 것일까? 아무튼 이 작가는 이후 약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뉴욕에서 전시하지 않았고, 부재를 통해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지난 2000년, 작가는 청춘을 회고하는 72세 노인의 모습으로 뉴욕 미술계에 복귀했다. 사랑, 상실, 멜랑콜리, 추억이 한 때 뜨거운 성교가 자리했던 자리를 대치했고, 예술애호가들은 영웅의 귀환에 경의를 표했다. 전설은 장엄하게 영원한 죽음을 맞았다. 드라마틱한 인생의 운영이, 위대했던 성애의 청춘을 사수하는 데 성공하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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