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7일 특검을 전격 수용키로 한 것은 국민 정서와 국회 상황이 고려했기 때문이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에서 다시 특검법을 처리하면 그대로 발효될 게 분명해 굳이 여론과 대치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듯하다.
이번에 넘어가더라도 다음 정권에서 어떤 식으로도 당선축하금 조사는 재론될 여지가 많다는 것도 의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선축하금에 대한 조사를 기피한다는 인상을 줘 “정말 뭐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만 키우기 보다는 정면돌파가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특검 수용의사는 밝혔지만, 동시에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공수처법 설치의 필요성을 새삼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특검 자체가 국회의 횡포라고 규정한 뒤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는 공수처 설치가 가장 중요한 사안인데도 국회가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특검은 시간과 예산만 낭비될 우려가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런 주장엔 당장 반론이 따른다.
노 대통령은 특검이 국회 횡포라고 주장했지만 왜 여당 의원 시절이던 지난 정권때에는 이런 주장을 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세차례 특검이 실시됐다.
또 공수처 설치가 중요한 사안이면 2004년 정부가 입안한 이후 3년간 잠자고 있었는데 그 동안은 왜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중요하게 된 것인지도 납득이 가지않는다는 지적이다. 또 노 대통령이 내세운 ‘특검 무용론’과는 반대로 아직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많은 국민들이 특검을 통한 진실규명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탓에 노 대통령 주장의 이면에는 특검 수사를 피하기 위해 공수처법 처리를 고리로 거부권을 행사하려다 국회 상황 등이 여의치 않자 불가피하게 특검 수용으로 돌아선 것이고, 그에 대한 배경설명을 장황하게 하다보니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결과가 나온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어쨌든 특검법 수용으로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노 대통령이 재임중 또는 퇴임 이후에 수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특검 수사에서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정치권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불어닥칠게 분명하다. 참여정부 전체의 도덕성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
또 노 대통령이 측근들의 비자금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자신있다.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 수사에서 청와대 인사 중 일부라도 삼성 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날 경우 정치권에는 회오리가 불가피하다. 수사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에서 친노세력은 물론, 현재의 여권에게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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