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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9>"日선수와 최악 조건서 1차 방어전…할아버지 생각하며 힘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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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 홍수환의 링은 교실이다] <9>"日선수와 최악 조건서 1차 방어전…할아버지 생각하며 힘을 내"

입력
2007.12.0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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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 카라스키야를 꺾고 WBA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에 오른 뒤 불과 3개월 뒤에 1차 방어전을 치러야 했다. 상대는 옵션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던 일본의 가사하라 유. 때는 1978년 2월1일. 장소는 적지인 도쿄의 국기관이었다.

나는 일본 선수와 시합을 치를 때마다 일제 때 일본인의 매를 견디다 못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33세에 청상과부가 되신 할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더 큰 용기가 생겼다. 두 분의 억울한 일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일본 선수들을 꺾어야만 했다.

사실 가사하라와의 시합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치러졌다. 무엇보다도 대전 일자가 너무 빨리 잡히는 바람에 가사하라 측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내가 바로 얼마전 타이틀 매치에서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기 때문에 아직 충격에서 덜 회복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그들의 분위기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면 된다는 식의 들뜬 분위기였다. 하긴 손도 안대고 코 풀게 생겼다고 믿는 그들의 속단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카라스키야한테 죽도록 얻어맞은 후유증을 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작부터 방어전 상대로 지목된 상대와 경기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멀리 파나마까지 가서 네 번이나 쓰러진 끝에 따온 타이틀을 일본에 가서 그리 쉽게 풀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흥! 어림없는 소리. 내가 하필이면 일본 선수한테 벨트를 넘겨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나는 곧바로 스파링 위주의 훈련을 시작했다. 가사하라는 나와의 경기 전에 치른 시합에서 필립 와루잉게를 KO로 날려 보내버렸다. 당시 그의 전적은 12연승(9KO) 무패였다.

우리 일행은 시합 10일 전에 도쿄에 도착했다. 숙소인 신주쿠의 호텔로 가기 위해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한 일본 기자가 신문을 건넸다. 가사하라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가사하라가 자기 아버지 묘지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아버지 영전에 챔피언 벨트를 바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아버지 묘소를 다녀온 터였다.

"도전자 가사하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일본 기자가 물었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딴청을 피웠다. 당시 일본은 세계 타이틀에 도전해서 12연패의 나락에 빠져 있었다.

기자가 그것에 대해 "일본이 연패를 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묻자 나는 "당신들은 에어컨과 히터가 있는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권투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살기 편해지면 그만큼 선수들의 근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일본에 살던 친구들 몇이 호텔로 찾아왔다. 그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그 외에 다른 음식도 시켜먹었다. 이튿날 아침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환이, 너 혹시 설사하지 않았니?", "아니, 왜?" 음식을 같이 먹은 친구들 말이 하나같이 심한 설사로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나만 아무렇지가 않았다.

그러나 시합 전날 계체량을 통과하고 호텔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던 과일 주스를 먹은 후 나도 친구들과 똑 같은 심한 설사 증상에 빠져버렸다.

그때까지 47전을 뛰어왔지만 그날처럼 당혹스러운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시합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곤경에 빠지다니. 저녁을 먹어도 설사, 시합 당일 아침,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설사는 계속됐다.

경기장에 가는 도중에도 설사 증세가 끊이질 않아 도중에 차를 세워 약국에서 지사제를 사먹고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왜 유제두 선배가 일본에서 약물 파동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양국 국가 연주가 끝난 후 반대편 코너에 서 있는 가사하라를 보니 얄밉도록 혈색이 좋아 보였다. 1라운드 공이 울렸고 몸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결코 일본 선수에게는 지지 않을 거라는 결의가 온몸에 다시 퍼졌다.

2라운드에 드디어 가사하라가 내 주먹에 걸려들어 다운이 됐다. 그리고 5회, 9회, 10회 등 모두 5번의 다운을 뽑아냈다. 9회에는 가사하라가 다시 일어서기까지 14초가 걸렸다.

다운된 가사하라의 뺨을 두들겨 가면서까지 시합을 속개시키는 레퍼리의 처사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15회 판정승으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시합을 끝내자 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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