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올해 6월 꾸준한 감독과 은행의 공동노력으로 은행권 혼합형 및 고정금리대출 비중이 지난해 9월 말 2.6%에서 올해 4월 말 6.2%로 늘었다고 자찬했다.
그러면서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미국(69%), 영국(28%)보다 아직 낮다며 금융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해 변동금리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었다.
시중은행의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제자리 걸음이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CD 금리가 상승세를 멈추지 않아 고정금리 상품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은행 지표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이자 부담은 고스란히 대출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국민, 우리, 신한 등 3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현황(잔액기준)을 살펴보면 명쾌해진다. 국민은 4월 각각 0.32%, 6.38%이던 고정금리와 혼합금리 비중이 10월엔 0.21%, 6.23%로 줄었고, 우리 역시 같은 기간 고정금리 비중이 1.68%에서 1.63%로 감소했다. 3대 시중은행의 변동금리 비중(10월 91.3%)은 6개월 새 고작 1.54%포인트 줄었을 뿐이다. 하나은행은 자료 제출마저 거부했다.
그나마 신한만 고정(4월 1.01%→10월 1.53%)과 혼합(4월 0.15%→10월 4.6%) 비중이 늘었을 뿐이다. 6월 내놓은 혼합형 상품인 '고정금리형 장기변동 대출'(5년까지 금리고정 이후 변동)과 10월 출시한 고정형 상품 '금리확정모기지론'(최장 30년)의 인기 덕분이다. 금리확정모기지론은 20일 현재 3,400억원의 취급액을 기록하고 있다.
또 대표적인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30년 만기) 10월 말 실적은 전달보다 38%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2,500억원대에 머물던 월별 실적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5%를 넘어선 7월 3,602억원으로 훌쩍 뛰더니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고정(혼합)금리 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다.
변동금리를 줄이겠다는 금융감독 당국의 각오와 고정(혼합)금리에 대한 수요 증가에도 불구, 시중은행들이 꿈쩍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금리 리스크를 고객이 떠안아야 하는 변동금리와 달리 고정(혼합)금리는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국민과 우리 관계자는 "은행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팔고 있기 때문에 굳이 신상품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신한 관계자는 "주택저당채권(MBS)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고정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했다"며 "금리 불안기에 수십 년의 리스크를 은행이 떠안는 건 사실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들은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고정(혼합)상품 초기 이율이 변동보다 평균 0.5%포인트 정도 높다 보니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가늠하기 힘든 게 금리 향방이라 고객이 묻기 전에는 은행 상담직원이 먼저 고정(혼합)상품을 권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시중은행은 고정(혼합)의 대안으로 금융감독 당국이 제시한 '금리상한 대출' 상품 출시마저 보류하는 등 미적거리고 있다. 요즘 금융시장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감독 당국의 호언장담이 허언이 되는 사이 이래저래 대출자의 시름만 깊어 가고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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