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私)금융에서 빌린 250만원이 연체이자까지 860만원이 되고… 추심원들이 집안 물건을 부수고 욕설과 협박을 하고… 지켜줄 사람도 돌봐줄 울타리도 없을 때 소액금융 지원은 밝고 맑은 미소를 되돌려주었어요.
이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살아요."(신용회복위원회 <소액금융지원 수기집> 중에서) 소액금융지원>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니다. 신용과 재산이 있는 자에겐 한없이 너그럽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와 실수로 실패의 늪에 빠진 서민에겐 무정(無情)하다. 은행의 문턱(신용등급 심사)은 높고, 대부업체의 이율(연 49% 상한)은 무섭다.
사회연대은행, 신나는 조합, 아름다운 세상기금, 창원지역 사회복지은행 4곳의 민간 대안금융기관(기금 247억원)이 애쓰고는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3월 말 기준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용 계층(8~10등급)은 약 537만명이나 된다. 경제형편이 어려운 서민에겐 '빚에서 빛으로' 건너갈 희망을 안겨줄 소액 신용대출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휴면예금을 깨운다. 2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는 내년 초 출범을 앞둔 '휴면예금관리재단 운영방안' 공청회가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렸다. 휴면예금관리재단은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을 줄이고, 금융소외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휴면예금은 금융회사에 예치 된 돈 중 소멸시효(은행 5년, 보험 2년)가 끝나고도 찾아가지 않는, '임자 없는 돈'을 말한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휴면예금은 1조587억원에 이른다. 이 중 30만원 이하 휴면예금은 내년 초까지 자동 반환될 예정이다.
이날 공청회에선 재단이 서민에게 소액 신용대출을 하면 음성(불법) 대부업 시장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주제발표에 나선 정찬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000억원이 넘는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저렴한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으면 대부업법 상 금리상한선을 지키지 않는 불법 대부업체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인 방법은 1인 당 500만원 범위에서 연 10~20%의 이자로 소액 신용대출을 시작하자는 것. 정 위원은 "금융회사를 통해 대행할 경우 은행 신용대출금리 수준인 연 10%+α의 이자율을, 기타 소액 신용대출은 연 20% 전후의 금리상한을 적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혜 대상은 은행 기준 7등급 이하 신용도를 지닌 저소득층으로 하되, 신용등급 외에도 소년ㆍ소녀 가장과 연령 등 기준을 마련해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정 위원은 특히 "재단에서 빌린 돈을 대부업체 빚을 갚는데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되, 금융기관 대출금의 상환에는 쓰지 못하도록 지원 조건에 명시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덕적 해이 등을 막기위한 조치로 민간 대안금융기관이 실제 소요자금의 50%를 부담하고, 재단이 저리로 나머지 50%를 지원하는 '매칭펀드'(Matching Fund) 도입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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