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특히 공영방송에게 지난 한 주 간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언론과 국민의 이목이 김경준의 귀국과 에리카 김의 기자회견, 삼성 비자금에 대한 폭로와 이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온통 쏠려 있는 사이에, 한편에선 공영방송의 미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굵직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면서 논란이 그치질 않았다.
우선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를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시민사회로부터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결국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중간 광고의 도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또 역대 정권 말기에 늘 그랬던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대선을 코 앞에 두고 다시 KBS 2TV와 MBC를 민영화 해야 하느니 마느니 논란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KBS의 수신료 인상안은 마침내 국회에 상정되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에서는 MMS의 도입으로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채널들이 늘어나게 되면 이 채널들을 무슨 콘텐츠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뿐 아니다. 올 봄 한미 FTA 체결로 외국 자본이 유료방송 시장에 진출해 지배적 사업자가 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해진 마당에, IPTV에 관한 법안이 국회 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이제 한국의 방송시장은 외국 자본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에게도 전면 개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한국의 방송을 둘러싼 법적, 제도적 환경은 지금 소용돌이치며 숨가쁘게 변하고 있는데, ‘복잡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미래의 우리 공영방송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무엇보다 대선 정국에서 횡행하는 수상쩍은 정치 논리들이 우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지 철저히 경계하고 감시해야 할 때다.
예를 들면 MBC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측 인사들의 주장이 공영방송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우리 방송산업의 발전을 위한 비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MBC가 그간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일삼았다고 보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라면 공영방송의 ‘민영화론’은 그 어떤 정당성도, 설득력도 가질 수 없다.
그런 정치 논리에 기댄 주장보다는, 오히려 특화된 케이블 채널들의 번성으로 인해 상업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공영방송이 공공성, 공익성, 공영성이라는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준엄하게 비판하고 개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길일 것이다.
야당만 정파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수용자 주권에 대한 고민과 대책 마련 없이 중간광고 허용이라는 중대한 정책적 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통과시켜 버리는 방송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그 결정 역시 정파적 이해관계에 근거했거나 지상파 방송사의 산업적 논리에 놀아난 것이라는 혐의를 둘 수 밖에 없게 된다.
한국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정책에 관한 논의는 편향된 정치 논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미디어 수용자의 권익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져야 한다. 대선 국면을 틈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발표되는 정치적 수사들을 언론은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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