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제1권이 발간된 <인물과 사상> 의 제호 아래에는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문구가 뚜렷이 박혀있다. <인물과 사상> 의 표지 디자인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유독 이 문구는 종간(終刊)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제호 주변에 자리 잡았다. 바로 이 문구야말로 <인물과 사상> 의 존재 이유이고, 그 역할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인물과> 인물과> 인물과>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1인 출판물로 시작된 <인물과 사상> 은 지식인 사회의 ‘성역’인 인물에 대해 ‘금기’였던 실명비판을 다룬 언론매체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 그동안 집단을 두루뭉술하게 비판하고, 개개 인물에 대한 평가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언론과 지식인 사회를 통렬히 깨우치며 <인물과 사상> 은 탄생했다. 인물과> 인물과>
강 교수는 제1권의 머리말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 언론의 자유는 없다고 못 박으며 “언론기업 이윤추구의 자유로 언론자유가 변질했다. 출판의 언론화야 말로 언론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대형언론과 달리 출판물은 보통사람의 접근이 용이하다. 엘리트만이 독점하는 우리의 언로를 한 명이 출간하는 단행물의 활성화로 좀 더 넓힐 수 있다는 게 강 교수가 <인물과 사상> 을 시작하며 가졌던 신념이다. 인물과>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는 “<김대중 죽이기> 가 괄목할 만한 반향을 받자 이에 고무된 강 교수가 출판물과 언론매체가 규합된 형태의 저널룩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책의 형태를 띤 1인 미디어는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혁신적인 매체였다”고 말했다. 김대중>
강 교수는 <인물과 사상> 을 기획했던 90년대 중반에 대해 “ <인물과 사상> 이 처음 나온 10년 전 권력의 통제는 사라졌지만 지식계의 불문율이라든가 금기 같은 습속은 살아있었다”며 “손바닥만큼 좁은 한국 지식계에서 권력 등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한 비판은 맹렬했지만 동업자들 간 실명비판이 어려웠고 이를 바로잡기엔 기존 매체론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책을 한두 권 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은 일은 아니었기에 저널룩이라는 방식을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인물과> 인물과>
<인물과 사상> 1권은 실명비판과 1인 미디어라는 특이함에 힘입어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든 5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다. 장 대표는 “독자들에게 낯선 책이었기 때문에 과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파이팅 넘치는 이슈 잡지로, 그리고 속보보다는 무르익은 분석과 논평으로써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인물과>
1권부터 강 교수는 손호철 서강대 교수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드롬의 허와 실을 가감 없이 지면에 실어 파문을 불렀다. 조순 대안론을 놓고 유시민씨와 벌인 논쟁, 진중권씨와 오갔던 이문옥 논쟁 등 성역을 설정하지 않는 <인물과 사상> 의 집중포화는 신선한 비판문화를 자리 잡게 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반면 ‘지식계의 선데이 서울’이라는 식의 지독한 혹평도 쏟아졌다. 인물과>
<인물과 사상> 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도토리라도 키를 재는 식의 직접적인 실명비판을 뿌리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강 교수는 “동종 영역의 내부 비판과 실명 비판을 금기시하는 수위를 낮추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자평했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는 “주제별로 만들어진 기존의 잡지와 달리 인물 위주로 쓰여 상당한 사회적 논쟁들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인물과>
강준만 교수의 1인 미디어로서의 외형은 25권으로 마감됐고 <인물과 사상> 은 26권부터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김진석 인하대 교수를 편집위원으로 위촉, 3인이 기획하는 미디어로 탈바꿈했다. 인쇄매체의 쇠락과 이에 따른 <인물과 사상> 의 시장위축을 보완하기 위한 변신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권 당 판매 부수가 수천 권에 그치는 등 1인 저널룩은 추락했고 결국 2005년 33권을 끝으로 종간이 선언됐다. 인물과> 인물과>
강 교수는 <인물과 사상> 이 8년 만에 종지부를 찍은 것에 대해 “인터넷의 활성화가 종간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하는 한윤형(아이디 아흐리만)씨는“지성계와 생활세계 간의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인물과 사상> 은 충분히 지적이지 못했고 또한 순간 순간에 대중의 반(反)지성주의에 부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인물과> 인물과>
■ 인물과 사상
1997년~2005년 총 33권이 발간됨. 도서출판 개마고원 발행. 강준만 교수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저널룩(저널+북)으로 출판의 언론화를 지향. 발간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부정기 간행물로 대략 분기에 1권 꼴로 출판됨. 주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실명비판을 다룸.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오는 월간 <인물과 사상> 과는 다름. 인물과>
■ 강준만 교수는…양비론 청산한 '죽이기' 시리즈 신선한 충격…토론·논쟁문화 대혁신
1997년 대선 때부터 막강한 비판력으로 무장한 강준만 교수의 글은 국내 정치 판도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대중 속에서 싹을 틔워왔다.
<인물과 사상> 에 앞서 90년대 중반 대학생의 필독서로 읽혔던 <김대중 죽이기> , <김영삼 정부와 언론> 등은 그동안 도토리 키재기에 그쳤던 지식인 사회의 양비론적 비판의 틀을 재구성한 역작이었고 강 교수 스스로 그 수 세기를 포기할 정도로 쏟아낸 많은 대중적인 단행본들은 실명비판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일궈냈다. 김영삼> 김대중> 인물과>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는 "그의 글쓰기는 지식인의 토론문화를 혁신했다. 토론과 논쟁을 통해 보상과 문책을 유도해내는 과정을 정착한 공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강 교수의 모습은 뜻밖에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다. 글로 일군 그의 정치비판 경험을 생각하면 충분히 TV토론 사회자를 거쳐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일 만도 한데 도통 언론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강 교수는 그 흔한 휴대폰마저 사용하지 않는다. 특별히 기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운전면허가 없는 그에겐 자전거가 대표적인 운송 수단이다. 그의 가족(아내와 두 딸)이 사용하는 집 전화가 있지만 강 교수와 연락이 닿기는 힘들다. 공적인 대화는 오직 그의 집필실에 놓인 팩시밀리와 제한된 이메일로만 가능하다.
<인물과 사상> 의 편집위원을 지낸 김진석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는 "책을 만드는 동안 직접 강 교수를 만난 적은 없고 오직 글로만 대화를 나눴다"고 말할 정도이다. 한 번은 강 교수의 자칭 팬들이 그를 KBS 사장으로 위촉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강 교수는 "실망이다. 내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사람들이 나를 아직 모르나"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인물과>
초면인 사람에겐 마치 은둔자처럼 보일 정도인 강 교수의 이와 같은 모습은 실명비판을 통해 만든 수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분석도 있다. 강 교수가 '원격 비판'을 한다고 꼬집는 이도 있다. 하지만 외부와 일정 정도 스스로를 격리하는 모습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방법일 뿐이라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김대중 죽이기> 부터 강 교수와 인연을 쌓아온 장 대표는 "다작을 쏟아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만들려고 외부와 떨어져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가장 즐거운 오락이라고 말하는 강 교수에게 이는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김대중>
따가운 비판과 논쟁을 즐기는 강 교수는 오만하고 불손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많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일흔 살이 되어도 스무 살 젊은이의 비판에 대해 성실하게 답할 것"이라고 말하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다. 학생들에게도 겸손하며 거칠지 않다. 장 대표는 "오히려 주변인들에게 말치레가 좋다. 딸들에게도 반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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