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특별수사ㆍ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 울산지검장ㆍ이하 특수본부)는 26일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에 대해 전격 출국금지를 단행함으로써 단호한 수사의지를 천명했다. 수사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이 회장 출금카드를 꺼낸 것은 향후 이 회장의 소환조사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대목이기도 하다.
특수본부의 출금 대상에는 이 회장을 비롯,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 삼성 그룹의 핵심 경영진이 포함됐다. 모두 김 변호사의 폭로를 근거로 참여연대 등이 고발한 인물들이다. 삼성그룹은 몇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 회장이 출금을 당한 것은 처음으로 검찰 내에서조차 놀라워 하는 분위기다.
특수본부의 고강도 조치는 검찰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풀이다.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까지 ‘떡값검사’로 거론될 정도로 검찰이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특수본부가 출범한 만큼, ‘성역 없는 수사’없이는 검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특수본부가 판단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회장 출금까지 주저했다면, 이후 수사 공정성에 대해 또다시 문제제기가 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했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특수본부 수사는 매우 강도 높게, 원칙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본부장은 이날 “삼성 수사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주장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수사 외적인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수사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부는 우선 김 변호사 소환을 서두르고 있다. 박 본부장은 “김 변호사 협조가 급선무라 곧 출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출두할 경우 특수본부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귀를 열고 하나하나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그 동안 김 변호사 주장에 대해서는 검찰 내에서 신뢰성을 의심하는 기류가 상당히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 수사는 김 변호사가 주장한 의혹을 전면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가 추가로 폭로한 의혹들도 검찰 수사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날 삼성측의 비자금 조성 회사, 조성 방식과 비율, 미술품 구입 등 비자금 사용처 및 삼성 사장단 명의 차용을 통한 비자금 관리ㆍ유통 흐름 등 전체 비자금 윤곽을 제시했다. 이 같은 ‘삼성 비자금 지도’는 검찰이 각종 의혹을 검증할 중요한 수단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김 변호사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그의 주장을 근거로 삼성 계열사 및 의혹이 제기된 우리은행 삼성센터 등에 대한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실시해 회계자료 등의 객관적 물증을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의 회계장부 분석은 보통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삼성 특별검사제 도입 이전에 수사결과가 나올 지가 관건이다. 또 의혹 제기 후 한달 정도 지났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이미 폐기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수사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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