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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수능시험을 본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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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수능시험을 본 아이들에게

입력
2007.12.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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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을 보기 며칠 전 한 학부모가 웃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들 녀석, 시험 끝나면 이불 덮어놓고 몰매라도 때리고 싶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사랑하는 자식을 때릴 리 없으니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수능시험 준비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했는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부모가 이럴진대, 그 아들은 어땠을까. 착하디 착했던 녀석은 수능시험 준비 하느라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늘었으며 부모에게 대들고 동생에게 화를 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양호하다. 시험 걱정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불에 뉘어도 쉽게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기가 푹 죽은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시험을 마치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큰 짐은 덜었지만 점수를 생각하니 마음은 더 무겁다. 등급제가 새로 시행되는데다 논술 준비까지 남아있으니 불안감은 여전하다. 통과의례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도 없고, 못사는 나라에도 없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일단 큰 시험은 마쳤으니 우리 어른이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것은 열 여덟(1989년 생)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다. 시험 준비 하라며 억제, 면제, 유예한 것을 되살려주는 것이다.

말이 열 여덟이지 공부 말고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교양도, 생활 속의 지식도 심지어 눈치도 없는 아이들이 많다. 영어, 수학은 잘해도 라면 하나 못 끓이는 아이.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너는 공부만 잘하면 돼. 나머지는 신경 쓰지 마." 이렇게 키워온 우리 부모 탓이다. 그러니 이제 그 나이에 맞는 가족 성원, 사회 성원이 되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다. 시험 준비에만 매달린 나머지 편협하게 혹은 왜곡해서 세상을 볼 가능성이 있다. 시험에서는 여러 개의 보기 가운데 하나만 답이지만, 현실에는 여러 개의 답이 존재할 수 있다.

나의 생각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도 옳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모순돼 보이는 두개 모두 답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을 폭 넓게, 유연하게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며 공부를 다그친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추종하지나 않을지도 걱정이다. 그 말은 현실에서는 맞을지 몰라도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믿고 따를 진리는 아니다.

최근 일어난 김포외국어고 사건을 보면서 그런 걱정은 더 깊어 간다. 혹시 아이들이 좋은 학교 가려면 시험 문제 유출 같은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나아가 세상은 으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또래가 아직 많다는 점도 알게 해야 한다. 경제적 궁핍으로, 가정의 해체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어쩌면 더 똑똑하고 더 재주가 많을지도 모르는 친구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일찍, 너무 지독한 경쟁의 세계에 던져진 나머지 그 나이에 맞는 열정과 발랄함과 호기심을 잃어버렸다. 대신 경쟁과 생존법을 몸으로 터득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아이들이 제 나이에 맞는 본성을 찾게 해주어야 한다.

박광희ㆍ피플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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