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 민음사'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여'
오늘은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의 3주기다. “아름다운 서정시와 전위적인 실험시, 사회비판적인 참여시는 김춘수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시를 통해 하나의 사유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는 김춘수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문학평론가 문혜원) 김춘수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순수한 사유를 통해 파악하고자 했던 ‘인식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론을 보면 “나의 인식을 지배한 두 사람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였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그의 인생행로는 전자에 훨씬 더 경도된 것이었다.
그의 시 ‘처용단장(處容斷章)’의 ‘제4부 뱀의 발'에 ‘역사는 나를 비켜가라,/ 아니/ 멧돌처럼 단숨에/ 나를 으깨고 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역사가 비켜가기 바라는, 혹은 역사에 으깨인 시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김춘수에게는 두 가지 경험의 자취가 뚜렷하다. 하나는 일제 말기 니혼대 유학중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일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7개월간 옥살이를 한 일, 하나는 1981년 5공 때 전국구 국회의원이 돼 정치에 발 담근 일이다.
그는 두 일을 두고 나중에 “모두 내 의지가 아니었던 100% 피동적인 사건”이라며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와 개인의 접점에서 아이러니를 겪은 시인은 ‘무의미의 시’로 나아가, 우리 시의 영토를 넓히고 그 ‘제일 아름다운’ 한 진경을 펼쳐보였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전문).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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