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하고 기후변화의 실체적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지금 대선 후보들의 유류세 인하 주장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10%,정동영 후보는 20%, 문국현 후보는 30%, 이인제 후보는 3분의 1 정도 유류세를 인하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서민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고유가가 서민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는건 사실이다. 최상위 소득계층과 최하위소득계층의 광열비 지출비중 편차가 무려 15배에 이르고 값싼 도시가스를 쓰는도시 사람과 값비싼 등유를 쓰는 시골 사람이 겪는 불평등을 올곧게 보고 이를 바로 잡고자 한 것이라면 반가이 맞을 일이다.
그런데 이들의 유류세 인하 주장에는 그러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고유가시대가 지속되는 속에서도 세계 1위의 자동차 주행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며 일본보다 곱절 이상 많은 중대형차 소유자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들은 승용 목적의 대형레저차량(RV)이 승용차 판매량의 70%를 넘어섰는데도 경유를 생계형 연료라고 주장한다. 고유가 상황에서도 과다하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유권자의 관성을 지지하고 그들의 불안을 해소해서 표를 얻으려는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유류세 인하 문제는 몇 가지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우리나라의 유류세가과연 과도하게 높은 수준인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류가격 대비 유류세비중은 57.7%로 프랑스 67.3%, 영국 64.7% 등에 비해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열네번째로 중간 수준이다. 회원국 중 비산유국만을 놓고 보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유류세가 과다해 유류가격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은 아직 우리나라를 국민소득 5,000달러 수준으로 보는 것과 같다. 오히려 정유사들이 챙기는 이문이 과다한지를 따지겠다고 나서야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다음은 유류세 인하가 정말로 서민 경제 부담 경감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트럭 운전사 등 생계용 차량 운전자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생계용 차량이 포함된 국내 경유차의 절대 다수는 앞서 말한 대로 대형 승용RV차량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말로 서민의 경제적 부담이 걱정된다면‘생계용 차량에 대한 유류세 환급’,‘ 대중교통확대 및 기반·편의 시설 확충’ 등의 방안을 내놓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서민경제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은 유류세 인하 문제와 별도로 논의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형태와 구조도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온실가스 배출국이고,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우리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월등히 큰 일본, 영국 등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OECD 국가중 최고다. 이미 에너지 소비가 기형적인 수준까지 높아졌고, 또 계속 높아지는 추세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는 커녕 오히려 소비 수준에는 문제가 없다는 듯 유류세 인하 공약을 내놓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수십조원이넘고, 향후 지구온난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한해 수십조원에서 많게는 3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를 운운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근본원인을 따져야 한다. 고유가에 치명적인국가구조, 구조화한 사회양극화, 현실화하고 있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 지위 등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보편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를 묻어놓고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표를 얻겠다는 선거판을 보자니 낯이 뜨거워진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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